습지 늪에 빠지다. feat 대섬 내 습지
서울에서 나고 자라 흙길보다 아스팔트 길, 숲속의 나무들보다 고층 아파트에 익숙했다. 비 오는 날, 아스팔트 길에서 물웅덩이를 만날 일은 없었지만, 학교 운동장에서는 고인 물과 만날일이 생긴다. 그럴 때면 신발이 더러워질까 요리조리 피해 다니기에 바빴던 내가 제주 이주 후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 산으로 들로 다니느라 옷은 죄다 등산복이고, 신발은 등산화가 되어갔다. 그렇게 다녔던 제주도가 여전히 새로운 제주 이주 10년 차.
지금 나는
습지 늪에 빠졌다.
화산섬인 제주이기 때문에 습지 형성이 어려울 것 같았던 내 착각과 무지를 단번에 날려버린 시간. 2022년 제주시 조천읍 람사르 습지 도시 인증 프로그램 지원 사업의 일환인 람사르 습지학교 '습지로 글쓰기'에 참여했었다.
들었던 내용을
기록해둔 사진으로
되짚어 볼까?
습지란?
축축한 땅! 일정 기간 물에 잠겨있거나 젖어있는 지역을 말하는데 육지와 물을 이어주는 중간 단계의 생태학적 환경 특성을 가지고 있어 생태를 연구하려면 습지만큼 좋은 곳은 없다. 지구 면적의 약 6%가 습지. 습지 종류는 크게 내륙습지와 연안습지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 대표 내륙습지로 대암산 용늪, 우포늪 등이 있고 대표적인 연안습지로는 무안갯벌, 순천만 갯벌 등이 있다.
그러면 늪은 뭐야?
국내 최대의 내륙습지이자 람사르협약 등록습지인 우포늪은 우포 습지가 아니라 우포늪으로 표기하고 있고, 동백동산의 습지는 먼물깍습지라 하고, 위에서도 언급한 순천만도 습지가 아닌 갯벌이란 표현을 썼다. 아직까지는 습지와 늪, 갯벌까지 구별하지 못하는 습지 초보자. 책이라고 읽어볼까 해서 e북으로 [늪]을 검색해 보니 므흣한 제목의 19금 책들만 보인다. 늪의 사전적 의미 중 2번째에 해당하는 이유로 므흣한 책 제목에 자주 등장하는 모양이다.
늪이란?
1. 명사 땅바닥이 우묵하게 뭉떵 빠지고 늘 물이 괴어 있는 곳. 진흙 바닥이고 침수 식물이 많이 자란다.
2. 명사 빠져나오기 힘든 상태나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내용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런 상태가 되면서 습지 늪에 빠져버렸다.
습지가 늪보다 범위가 넓은 말인가?
습지와 늪에 차이를 알고 싶어 검색하다 보니 국립국어원 사이트 Q&A까지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습지와 늪을 구별할 날이 오기를 바라며, 나 홀로 제주도 습지와 첫 대면을 시작했다.
대섬 내(內) 습지
✅ 주소 : 신촌리 529-8번지 내
✅ 길이/폭/면적 : 길이 19m, 폭 15m, 면적 355.80㎡
✅ 주민 생활과의 관련성 : 생기리 공장
✅ 동식물 특징 : 청둥오리, 봄에 산개구리 알을 관찰함
✅ 특징 : 바닷물이 드나들어 물때에 따라 수위가 달라짐
* 내용 출처 : 람사르 습지도시 조천읍 습지 조사 자료집
대섬
점성이 낮아 넓은 지역으로 퍼지면서 흘러내린 용암류(파호이호이용암류)가 표면만 살짝 굳어져 평평하게(투물러스) 만들어진 지형이 특징인 대섬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형이다. (* 내용 출처 : 제주 올레)
대섬은 낮에 어류와 패류의 건조장으로 야간에는 방목지로 이용되었고, 방목이 없어지면서 농산물 건조장으로 이용되었다. 생기리(무말랭이 방언) 생산이 활발할 때 무를 씻던 곳으로 지역민들은 일명 '생기리 공장'으로 부르기도 했던 곳이다. (* 내용 출처 : 람사르 습지도시 조천읍 습지 조사 자료집)
제주올레 18코스(제주 원도심~ 조천 올레)를 걷다 만났던 곳이 대섬인데, 신촌리와 조천리 경계 중 신촌리에 위치한 곳이다. 섬에 조릿대가 많아 불린 이름이었다는데 나는 조릿대 대신 억새가 가득한 대섬을 본 적 있다. 2017년에 올레길 18코스 걷다 만난 대섬에는 억새가 가득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야자수 올레길이란 게 생기면서. 그 많던 억새는 사라지고 워싱턴 야자수를 식재해, 관광객들이 인스타 갬성사진, 스냅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찾는 제주도 핫플레이스이기도 했던 곳이다. 그런데 이곳이 절대 보존지역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기사를 통해서였다.
딱 그 시기! 조용하던 대섬이 북적거리기 시작하면서는 발길을 끊었다가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한라산에 첫눈(눈 날림)이 내린 다음 날인 2022년 12월 1일이어서 뚝 떨어진 기온! 제주도가 이렇게 추웠나? 싶을 만큼 차가운 공기가 당황스럽다.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차로 더 차갑게 느껴졌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추운 날 누가 찾아올까?' 싶은데도 여전히 올레꾼들이 지나고 있었고, 이전과는 달리 대섬 입구에는 차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놨다.
'대섬 진입로를 지나 살짝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움푹 파인 습지를 볼 수 있다.'라고 알고 갔지만 한 번에 눈에 들어왔던 것은 아니다.
이곳이 습지였는지 모르고 지나던 길이었던 만큼 한 번에 눈에 들어온 건 아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대략적인 위치를 지도로 보고 가니 억새 사이로 생각보다 큰 습지가 있었다. 습지 주변이 다양한 식물들로 진입장벽이 있었지만, 둘러볼 수 있는 위치가 보이면 안으로 들어서봤다.
경사도가 90도로 뚝! 끊기는 거 같다. 처음 가본 습지이기도 하고, 정보가 많지 않아서 바닥이 보이는 곳까지만 가서 안전하게 스마트폰 줌으로 당겨 사진을 찍어본다. 사진을 확대해 봤더니 돌덩이 위로 제법 식물들이 무성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의 변화되는 모습, 거기서 자라는 동식물과 밀물, 썰물일 때 습지는 또 어떤 모습일까? 이곳이 습지라 인지하지 못했다면 조금 큰 웅덩이로 기억했을지도 모르고, 그 웅덩이는 기억조차 희미해졌을지도 모른다.
습지는
거대한 자연 정수기처럼 흙이나 모래로 물을 여과해 깨끗한 지하수를 만들어 물 공급을 해준다. 이탄습지는 지구 전체의 숲보다 2배 많은 탄소를 저장하고 연안습지는 태풍과 쓰나미의 충격 감소 및 해안침식 방지 등 기후 조절 기능을 한다. 그 외에도 수질정화, 식량제공, 생물 다양성 보고(寶庫)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이리 고마운 습지가 인간들의 개발행위로 세계 습지의 90%나 1700년대 이후 사라졌다고 한다. 습지가 주는 다양한 가치와 중요성을 인지했으니 앞으로는 좀 달라질 거라 생각하며 첫 번째 글을 마친다.
우리가 몰랐을 뿐.
습지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고
우리에게 많은 것들 해주고 있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