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길러낸 산물, 삼양동 샛도리물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샛도리물 |
글, 사진 / 습지블로그 서포터즈 양정인
바람이 없는 날 제주의 겨울은 봄처럼 온화하다. 겨울이지만 삼양동 검은 모래 해변에는 맨발로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화산석이 풍화되어 쌓인 독특한 검은빛 모래가 펼쳐진 해안은 호미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오래전부터 삼양동은 검은 모래뿐만 아니라 물이 풍부하기로도 유명하다. 검은 모래 해수욕장 서쪽 진입로에는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삼양 1, 2수원지가 있다. 지하수로 함양된 용천수를 수돗물로 공급하기 위한 처리시설이다. 삼양동 바닷가 곳곳에도 용천수가 솟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검은 모래 해변이 있는 삼양해수욕장과 삼양 수원지 |
용천수는 땅속을 흐르던 지하수가 지층의 틈을 통해 지상으로 솟는 물을 말한다. 삼양동 해안에 대규모 용천수가 발달한 이유는 뭘까?
한라산 고지대와 중산간 지역에서 함양된 지하수는 지하의 투수층을 따라 해안가로 이동하여 바닷가 근처에서는 지표 가까이에 형성된다. 해안가는 용암류(지층)가 끝나는 곳이기에 지하수가 솟아나올 수 있는 지층구조(지층 말단부, 절리, 용암류 경계)들이 발달한다. 그래서 제주도 바닷가에는 용천수가 많이 분포한다.
특히 지형적으로 주변지역보다 오목(凹)하게 들어간 해안가에 용천수가 밀집되어 있다. 지하수위 등고선이 지형과 일치하는 형태(지하수 골짜기)를 보이는 지역에 대규모 용천수가 존재하는데 삼양동 해안이 그러한 대규모 용천수가 발달할 수 있는 수리지질학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가름선착장과 샛도리물 |
검은 모래 해수욕장의 동쪽으로 계속 걷다보면 배들이 정박한 가름선착장이 보인다. ‘가름’은 제주어로 작은 동네, 마을을 뜻한다. 아담한 선착장은 돌담으로 구획을 지은 옛 모습이 남아있어 운치가 있다. 속까지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에는 물고기들이 꽤 많이 보인다.
때마침 선착장 옆, 단물이 흘러나오는 빨래터에서 마을 주민이 손빨래를 하고 있다. 선착장 돌담에 앉아 한가로이 쉬는 왜가리의 모습까지 어우러져 평화로운 정경이다.
여자목욕탕 앞에 있는 샛도리물 표지석 |
빨래터 근처에 여탕이라고 쓰인 곳 앞에는 물구덕(바구니)에 물허벅(물항아리)을 진 여인상과 샛도리물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에는 이곳에서 먹을 물을 길어다 사용했음을 짐작케 한다.
표지석 내용에 의하면 샛도리물이 있는 삼양 1동은 산기슭에 호미 모양의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서흘포'라 이름 짓고 '설개'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 포구에는 용천수들이 있었으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샛도리물이다.
외할머니 태어난 동네가 삼양이라 종종 '설갯할망'이란 단어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동네가 할머니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물도 길어다 먹고 했을 장소겠구나 싶다.
샛도리물은 굿을 할 때 깨끗한 물을 뿌리며 나쁜 기운과 잡귀인 새(까마귀)를 쫓아내는 '샛도림(새 쫓음)'을 하기 위해 이 물을 길어서 쓴 데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샛도리물을 이용하는 모습 |
샛도리물 빨래터와 독통물(사진 왼쪽 아래 경계 구역) |
샛도리물은 식수터와 빨래터를 구분해서 사용했다. 샛도리물의 동쪽 맨 끝에는 독통물이 위치해 있는데 농기구 등을 씻는 허드레 물로 사용하던 곳이다.
여자목욕탕 입구에 있는 식수통 |
여자목욕탕 내부 모습 |
남자목욕탕 입구 |
예전부터 마을의 ‘물통’으로 사용되던 이곳은 아직까지도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여자목욕탕 입구에 있는 식수통과 물팡(물허벅을 놓는 돌 선반), 물가림막은 예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여탕 입구에 식수통이 있는 것을 보면 물 긷는 일은 여성들만 전담했던 노동이었나 싶은 궁금증이 든다. 그러고 보면 물허벅을 지고 있는 석상이 남자인 경우를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샛도리물 맞은편에 있는 엉덕알물 |
도로 건너 샛도리물 맞은편에는 엉덕알물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비탈진 지형에 엉덕(언덕) 아래(알) 굴처럼 움푹 페인 궤(바위그늘의 제주어)에서 흘러나온 물이 샛도리물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곳은 밀물 때에도 바닷물이 섞이지 않아 밀물 때 식수원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용천수가 풍부한 삼양동 해안 전경 |
삼양동의 풍부한 산물과 옛 자취를 돌아보니 선사시대 유적지가 대규모 용천수가 솟는 이곳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와닿는다. 청동기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기간 크고 작은 집터를 비롯해 마을 공간을 구획한 돌담과 배수로, 화덕, 저장고, 폐기장, 무덤 등이 확인될 정도의 대규모 마을을 형성할 수 있었던 건 풍부한 물을 가까이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긴 시간, 이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을 살리고 문화를 이어가게 한 근원이 바로 바닷가에 솟는 산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제주 사람들은 용천수를 살아있는 물이라고 ‘산물’로 불렀지만, 한편으론 이 땅에 사람과 문명을 살리며 살아온 ‘산물’이기도 하다.
-----------------------------------------------------
참고 자료 : 제주도 지질여행, 박기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2013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