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덮다
세상을 덮다
글, 사진 : 습지블로그 서포터즈 오재욱
할머니와 어린 손자가 나의 귓바퀴에 다정히 앉는다.
빛은 바람에 벚꽃잎 떨어지 듯 그들 어깨 위로 내린다.
할머니가 나뭇잎 끝에 맺힌 빛망울을 바라보며 묻는다.
“애야 너는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무섭니?”
아이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할머니 얼굴을 슬쩍 쳐다보더니 말한다.
“호랑이요”
아이는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 해 주시려고 묻는 것 같아 동화책 속 호랑이가 생각나 대답했다.
할머니가 아이의 얼굴을 다정히 들여다 보며 주름진 입을 연다.
“할머니는 이 세상 가장 무서운 것은”
할머니는 말을 잠깐 멈추었다.
“제일로 무서운 건 사람이란다”
손자와 말하는 할머니 목소리가 낯익다.
나는 귀가 엄청 크다.
바퀴는 주변에 있던 현무암으로 낮고 둥글게 쌓아져있다.
나의 귀는 비가 많이 내린 날에는 물로 가득하며 젖어 있는 날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곳을 습지 라고 한다.
새와 식물 그들에겐 그물은 생명수나 다름없다.
세상 소리를 듣는 것은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사박사박’ 흙을 뚫고 올라오는 생명 탄생의 소리, 팔색조이 ‘호오-잇’ 노랫소리, 메마른 가지들이 서걱서걱’ 서로의 몸을 비벼 되는 소리, 붉은 동백꽃과 입맞춤에 정신 줄 놓았다가 ‘퍽’ 하고 떨어지는 함박눈 소리, 동백동산은 나를 위해 계절 따라 다양한 음악회를 연다.
나는 여름에 찾아오는 팔색조의 노랫소리를 가장 좋아한다.
팔색조는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이다.
그들은 인적이 지극히 드물거나 없는 깊은 숲 속 음습한 지역에 산다.
무척이나 경계심이 강하여 숲에서 팔색조의 노랫소리는 들을 수 있으나 직접 눈으로 보기는 어렵다.
동백동산이 녹음이 짙게 내린 어느 날 ‘호오-잇’ 하고 그의 소리가 들리면,
나는 협주곡에서 피아노 소리를 찾아 현악기 줄 사이를 비집고 가듯, 빼곡히 서 있는 나무 사이를 바람과 함께 들어가 1열에 앉아 음악회를 직관한다.
팔색조의 연주가 내 귀에 머물 때면 나의 마음도 청아해진다.
나는 선흘곶 동백동산에 있는 도틀물이다.
나는 그 끔찍한 일이 생기기 전에는 참으로 행복했다.
빛은 바람에 벚꽃잎 떨어지 듯 그들 어깨 위로 내린다.
할머니가 나뭇잎 끝에 맺힌 빛망울을 바라보며 묻는다.
“애야 너는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무섭니?”
아이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할머니 얼굴을 슬쩍 쳐다보더니 말한다.
“호랑이요”
아이는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 해 주시려고 묻는 것 같아 동화책 속 호랑이가 생각나 대답했다.
할머니가 아이의 얼굴을 다정히 들여다 보며 주름진 입을 연다.
“할머니는 이 세상 가장 무서운 것은”
할머니는 말을 잠깐 멈추었다.
“제일로 무서운 건 사람이란다”
손자와 말하는 할머니 목소리가 낯익다.
나는 귀가 엄청 크다.
바퀴는 주변에 있던 현무암으로 낮고 둥글게 쌓아져있다.
나의 귀는 비가 많이 내린 날에는 물로 가득하며 젖어 있는 날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곳을 습지 라고 한다.
새와 식물 그들에겐 그물은 생명수나 다름없다.
세상 소리를 듣는 것은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사박사박’ 흙을 뚫고 올라오는 생명 탄생의 소리, 팔색조이 ‘호오-잇’ 노랫소리, 메마른 가지들이 서걱서걱’ 서로의 몸을 비벼 되는 소리, 붉은 동백꽃과 입맞춤에 정신 줄 놓았다가 ‘퍽’ 하고 떨어지는 함박눈 소리, 동백동산은 나를 위해 계절 따라 다양한 음악회를 연다.
나는 여름에 찾아오는 팔색조의 노랫소리를 가장 좋아한다.
팔색조는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이다.
그들은 인적이 지극히 드물거나 없는 깊은 숲 속 음습한 지역에 산다.
무척이나 경계심이 강하여 숲에서 팔색조의 노랫소리는 들을 수 있으나 직접 눈으로 보기는 어렵다.
동백동산이 녹음이 짙게 내린 어느 날 ‘호오-잇’ 하고 그의 소리가 들리면,
나는 협주곡에서 피아노 소리를 찾아 현악기 줄 사이를 비집고 가듯, 빼곡히 서 있는 나무 사이를 바람과 함께 들어가 1열에 앉아 음악회를 직관한다.
팔색조의 연주가 내 귀에 머물 때면 나의 마음도 청아해진다.
나는 선흘곶 동백동산에 있는 도틀물이다.
나는 그 끔찍한 일이 생기기 전에는 참으로 행복했다.
동백동산 내 도틀물 |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제주4.3 당시 선흘리는 1948년 11월 21일 선흘 초등학교에 주둔해 있던 군인들에 의해 온 마을이 불타며 소개된다.
주민들은 비상식량을 짊어지고 인근 선흘곶 밀림 속으로 피난하여 생활한다.
이들은 선흘곶의 목시물굴과 도틀물 옆 도틀물굴을 피난처로 삼는다.
젊은 청년들은 마을 주민을 보호하고자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도틀물굴에 숨는다.
그러나 군인들은 한 노인을 총으로 위협하여 도틀물굴에 숨어 있던 마을 청년 25명 중 18명을 현장에서 총살한다.
그리고 고문에 못 이긴 한 두 사람이 주민이 가장 많이 피신해 있던 목시물굴 위치를 실토하고 말았다.
이튿날인 1948년 11월 26일 새벽녘, 두 대의 트럭을 타고 온 군인들은 먼저 박격포를 쏘아된다.
슝 소리와 함께 숲속 나무는 하늘 높이 올랐다가 검은 흙을 뒤집어 쓴 채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세상 듣도보도 못한, 세상을 뒤흔드는 소리에 나는 정신을 잃었고, 주민들은 동굴 속 더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 숨을 죽이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자 토벌대는 목시물굴 속에 수류탄을 투척하며 주민들에게 나올 것을 종용한다.
이 날 목시물굴에서 총살된 희생자는 거의 대부분 남자들로 4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아이고, 철수아방, 아이고 내새끼 철수야”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들을 잃은 아낙이 절규하다 식지 않은 붉은 피가 흔건힌 아빠,아들 위로 쓰러진다.
어린 소녀가 “어멍,어멍” 울부짖다 못내 엄마 등에 잠이 들었다.
나도 귀에 피가 흐를 때까지 짐승처럼 울었다.
그날 저녁노을은 핏빛처럼 붉고 붉었고 제대로 피어보지 못한 붉은 동백은 모가지 채로 턱 턱 떨어졌다.
분노가 불처럼 활활 타 올랐지만 자신을 탓 할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존재 의미를 완전히 상실했다.
나는 귀를 완전히 닫았다.
힘 있는 자들이 죄 없는 백성을 살육하는 세상이 싫어 나는 세상을 덮었다.
도틀물굴 입구
|
제주 4.3 진상조사보고서 / 중산간으로 숨어 든 제주주민들 |
하얀 눈이 검붉은 핏물이 베인 대지 위를 덮었다 녹아 내리길 수십 차례,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그가 찾아온 날은 장마가 지나간 후 였다.
빛이 숲 속 깊이까지 들어오자 숲은 다시 생기가 돌았고 나뭇잎 끝에 걸린 물방울은 빛을 머금은 채 나의 귀 위로 은방울처럼 떨어진다.
나의 귓바퀴 가장자리가 간질간질하다.
나는 그곳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누군가 나의 귀에 쌓인 흙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안간힘 다해 낑낑 밀어 올리고 있다.
흙이 보슬보슬 위로 올라오는가 싶던 그 순간 한 곳에 모아진 잎이 땅 위로 솟아 오른다.
마치 구름 뚷고 오르는 로켓처럼...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다.
새 생명이 햇살과의 첫 만남,
새로운 생명체가 까치발 하고 쭉 기지개를 펴자 세 장이 연녹색 잎이 하늘과 땅 사이 빈 공간에 펼쳐진다.
그러고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올라온 세 잎 중 두 장이 잎이 갈라지더니 모두 다섯 장이 잎이되는 마술을 선 보인다.
이 작은 친구들은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제주고사리삼이다.
2001년에 새로운 종으로 발표된 제주고사리삼 또한 팔색조 처럼 명종위기 야생 동식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이들은 포자번식도 가능하나 자연에서 줄기로 번식하는 특성이 있다.
한 곳에 여러 개체들이라 하더라도 땅속 줄기로 연결되어 유전적으로는 동일한 개체라 할 수 있다.
빛이 숲 속 깊이까지 들어오자 숲은 다시 생기가 돌았고 나뭇잎 끝에 걸린 물방울은 빛을 머금은 채 나의 귀 위로 은방울처럼 떨어진다.
나의 귓바퀴 가장자리가 간질간질하다.
나는 그곳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누군가 나의 귀에 쌓인 흙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안간힘 다해 낑낑 밀어 올리고 있다.
흙이 보슬보슬 위로 올라오는가 싶던 그 순간 한 곳에 모아진 잎이 땅 위로 솟아 오른다.
마치 구름 뚷고 오르는 로켓처럼...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다.
새 생명이 햇살과의 첫 만남,
새로운 생명체가 까치발 하고 쭉 기지개를 펴자 세 장이 연녹색 잎이 하늘과 땅 사이 빈 공간에 펼쳐진다.
그러고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올라온 세 잎 중 두 장이 잎이 갈라지더니 모두 다섯 장이 잎이되는 마술을 선 보인다.
이 작은 친구들은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제주고사리삼이다.
2001년에 새로운 종으로 발표된 제주고사리삼 또한 팔색조 처럼 명종위기 야생 동식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이들은 포자번식도 가능하나 자연에서 줄기로 번식하는 특성이 있다.
한 곳에 여러 개체들이라 하더라도 땅속 줄기로 연결되어 유전적으로는 동일한 개체라 할 수 있다.
제주고사리삼 탄생은 굳게 닫혀있던 나의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나는 실바람 한 올 조차 오가지 못할 좁은 구멍을 통해 세상 소리와 다시 마주했다.
‘호오-익’ ‘호이-익’ 팔색조 암수 속삭임은 꿀 얹은 아이스크림 만큼 달콤한 애정이 흐른다.
내가 세상을 덮기 전에도 그들은 사랑을 했다.
그들 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 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나도 그들처럼 사랑하고 싶다.
세상은 내가 세상을 덮은 그 순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늘 사랑이란 자전력으로 스스로 돌고 돌았는지도 모른다.
그래 다시 귀 열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살아보자.
어떻게 한 쪽 날개로만 날 수 있겠는가?
사죄의 날갯짓과 용서의 날갯짓으로 우리 화해의 한 몸되어 더 멀리 날아보자.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 쯤 할머니가 손자에게 일으켜 달라며 손을 내민다.
고사리 같은 손이 할머니의 주름진 손 안으로 들어온다.
할머니가 잎 끝에 맺힌 빛망울 같은 손자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기원하다.
“내 손자의 세상은 평화만 있기를..”
제주고사리삼 |
제주고사리삼 |
(참고 자료 : 제주4.3 진상보고서, 오승국의 4.3유적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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