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에서 솟는 귀한 산물, 우진제비샘
글, 사진 / 습지블로그 서포터즈 양정인
우진제비샘 봄 풍경 |
우진제비는 말발굽형 분화구 안사면 중턱에 샘물이 솟는다. 말발굽형의 지형은 말이나 소를 가두어 기르기에 적합했는데, 우진(牛鎭)이란 이름도 소들이 진을 치고 앉아있는 모습에서 왔다는 말이 있다. 우진제비 샘터 옆 표석에는 산세가 보는 방향에 따라 소가 누워있거나 제비가 날아가는 모습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분분하다.
오름 초입 제법 가파른 돌계단 옆으로 키 큰 삼나무가 들어서있고 쇠고비, 나도히초미, 십자고사리 같은 상록성 양치식물들이 겨울에도 푸름을 자랑한다. 계단을 오르느라 숨이 찰 즈음 시야가 트이며 갈림길이 나오고 반가운 습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우진제비샘 가을 풍경 |
연못 주변에는 겨울에도 나도히초미, 십자고사리, 쇠고비 같은 다양한 상록성 양치식물이 자란다. |
구지뽕나무가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운 고즈넉한 습지 풍경에 저절로 발걸음이 이끌린다. 늦가을임에도 연못을 에워싼 돌담에는 쇠고비, 나도히초미, 십자고사리 등 다양한 상록성 양치식물과 이끼가 싱그럽다. 연못 안 다른 습지 식물들은 시들었지만 파릇한 미나리가 꽤 넓게 퍼져 자라고 있었다.
겨울을 준비하는 고요한 습지는 졸졸졸 샘물 흐르는 소리만 가득하다 . 그러나 분명 이 습지 어딘가엔 도롱뇽과 개구리가 겨울잠에 들어있을 것이다. 지난 봄 습지를 찾았을 때 1급수에만 사는 도룡뇽과 개구리 알이 가득했던 걸 기억한다.
우진제비 오름의 화산 송이 (스코리아) |
어떻게 이런 오름 중턱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는 걸까? 문득 신기하고도 고맙게 느껴진다. 제주의 오름을 오르다보면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붉은 송이(스코리아)를 보게 된다. 우진제비 오름 역시 그렇다. 현무암이나 송이와 같은 화산암은 빗물을 잘 투과시키는 성질을 갖는다. 비가 내리면 지표면의 빗물은 오름 내부의 화산석까지 내려가 흡수된다. 흡수된 물은 화산 암반층을 거치며 여과되고 다시 맑은 샘물로 솟아난다.
지질연구학자들은 우진제비의 경우 그런 지하수 순환시스템이 오름 안에 잘 발달된 전형적인 사례라고 얘기한다. 예로부터 우진제비 물은 수질이 좋고 수량이 풍부해 사시사철 마르지 않았다. 가뭄이 들었을 때는 이웃마을 선인동, 덕천에서까지 물을 길러 찾아올 정도였다.
우진제비샘 맨 윗쪽 샘물. |
우진제비샘의 두 번째 연못과 세 번째 연못 |
우진샘은 맨 위에 오름 화구 깊숙이 들어간 곳에서 산물이 솟는 작은 샘터가 있고 그 다음 아래 칸에 샘에서 흐르는 물을 받을 수 있게 돌담을 쌓아 큰 연못을 만들었다. 그 아래 세 번째 연못까지 물을 받은 걸 보면 수량이 매우 풍부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용도에 따라 돌담을 쌓고 물을 구분해 사용하는 형태는 전형적인 제주의 물 사용 방식이기도 했다.
제일 위쪽 식수로 사용했던 샘물 입구는 마소가 들어오지 못하게 돌담을 높게 쌓은 흔적이 남아있다. |
오름 분화구 둘레길에 있는 굴피나무 |
굴피나무 열매 |
습지 양 옆으론 분화구 전망대로 오르는 화구 둘레길이 이어져있다. 바닥엔 빨간 팥배나무 열매와 마른 때죽나무 열매, 굴피나무 열매 등이 가득 떨어져있다.
우진제비는 그 어느 오름보다도 식생이 다양하다. 분화구 외사면은 삼나무 조림지로 조성되었고 분화구 안사면은 낙엽활엽수가 주종을 이룬다. 삼나무 조림지에는 예덕, 머귀, 곰의말채나무 등이 혼재하고 하부에는 비교적 습한 지역에서 자라는 물봉선, 고마리, 나도히초미, 뽕모시풀 등이 자라고 있다.
연못 주변에 있는 팥배나무 |
팥배나무 열매 |
낙엽활엽수림 지역은 팥배, 느티, 때죽, 떡윤노리, 산뽕, 개서어, 산딸나무 등이 우점한다. 하부에는 상산, 새비, 가막살, 덜꿩나무 등의 관목류와 방울꽃, 맥문동, 개승마, 십자고사리, 한라돌쩌귀, 큰천남성 등이 자라고 있어 삼나무 조림지역 식생과 구분된다. 오름 중턱 습지에는 1등급 물에 사는 도롱뇽, 올챙이, 소금쟁이, 물방개 등을 관찰할 수 있고 오름 정상부에는 타래난초 같은 식물도 관찰되면서 식생의 변화가 빨라지고 있다.
반그늘 습한 곳에 자라는 이삭여뀌. 봄에 돋아난 이삭여뀌 잎에는 영양의 뿔 같은 멋진 무늬가 있다. |
맑은 물이 샘솟고 다양한 식생을 품은 알찬 오름이지만 주변 환경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우진제비 오름으로 진입하는 길에는 공장과 공동묘지가 들어서있고 폐기물들이 그대로 길가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주변의 말 키우는 곳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용도의 오수는 그대로 오름의 지반으로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용천수는 과거에는 제주 사람들의 생명의 젖줄이었고 지하수의 오염도를 가늠할 수 있는 제주 지하수의 얼굴이기도 하다. 제주의 많은 습지들이 하천 정비공사나 개발사업으로 원형이 훼손되기도 하고 용천수 주변을 시멘트로 막아버려 산물이 아닌 죽은 물이 되어버리기도 하니 안타깝다. 보전을 위한 관련 법안이나 여러 제도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인 것은 제주 사람들의 생명의 원천이 되어준 살아있는 ‘산물’을 귀하고 신령스럽게 여겼던 마음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진제비오름 입구의 표지판 안내 문구에 우진샘은 사시사철 물이 끊이지 않아 가뭄이 들었을 때는 선흘부터 덕천까지 식수로 사용했다는 설명이 눈길을 끈다. |
*우진제비 오름의 식생 및 지질은 제민일보 기획연재 [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29.우진제비, 김철웅 기자의 (2012.06.27.) 기사내용과 인터뷰 내용을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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