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진사통


글, 사진 : 습지블로그 서포터즈 오재욱


어머니가 평상시 보다 일찍 일어나 등에 물구덕을 지고 부엌과 진사통을 바삐 오간다.
"어멍 무사 경 바쁘꽈?"
"내일 설피하러 가젠허난"
엄마는 물팡 위에 물허벅을 가지런히 놓고는 눈 비비며 묻는 누나에게 말한다.
어머니가 내일 본토로 땔감 하러 나가려니 바쁘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살았던 우도는 물과 나무가 귀한 곳이다.
부족하니 귀한 것인지, 귀해서 부족한 것인지 몰라도 물과 땔감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주민들은 수확한 보리, 유채 같은 농작물 가지 줄기 등을 취사용 땔감으로 이용했다.
그렇지만 난방이 필요한 겨울철에는 어느 집이나 땔감은 부족했다.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 설피하는 수고는 선택 아닌 필수였다.
설피하러 본토로 나가면 보통은 2~3 일 지나 돌아왔다.
그러나 집으로 오는 날 풍랑이라도 불면 그 기간은 예측할 수 없이 길어졌다.
그러니 어머니는 우리가 사용할 물을 최대한 많이 준비해 두었다.
물항(물 항아리)은 물론 다 먹은 고추장 항아리까지 물로 가득 채웠다.
설피하러 나가면 가깝게는 종달리, 멀기는 송당까지 올라가야 했다.
어머니 고향이 본토 있는 하도리라 그곳에서 숙박하며 설피를 했다.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직접 담은 자리젓, 갈치젓을 항아리째 들고나갔다.
갖고 간 젓갈을 주고 숙식을 제공 받았다.
중산간 송당 사람들에게 갈치젓, 자리젓은 귀한 음식이었다.
예전에는 마을에 숙박 시설이 전무했다.
농가에 빈방을 제공 받는 것은 엄청나게 운이 좋은 경우다.
창고나 부엌 한 귀퉁이에서 하룻밤을 의지 할 수 있었다.
밤새 무서워 뜬눈으로 보내고 새벽이면 일어나 주인집 아낙과 함께 아침 준비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어머니의 희생이란 이불을 덮어 겨울을 따뜻이 지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겨울 걱정이 끝난 것 아니었다.
겨울이면 섬주민들을 힘들게 하는 것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물이다.
섬 주민들은 마을 근처 습지를 식수용 물통으로 정비했다.
몇 가구 안되는 우리 마을에는 그런 물통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 동네 양벵방통물이나 또 다른 마을 진사통 물을 이용했다.
물이 풍부한 계절에는 물 인심은 넉넉했고 물이 귀하면 물인심 또한 그만큼 아꼈다.
특히 가뭄이 심한 겨울철 물인심은 겨울 날씨처럼 차가웠다.
그럴 때면 마을에서는 물통 입구에 바람막이 시설을 했고 젊은 사람들이 순번제로 경계를 섰다.
물통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급수를 위한 것이다.
물통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하루에 물허벅 하나 양의 물을 배급 받을수있었다.
그러나 마을 물통이 없는 우리는 어디에서도 물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밤과 새벽 경계에 형을 깨웠다.
작은 물통을 든 형의 보드라운 왼쪽 손과 물허벅을 진 어머니 거친 손이 한 손 되어 밤길을 걸었다.
눈이 세찬 바람과 함께 검은색 어둠에 하얀 상처를 냈고 어머니와 형은 고개를 더욱 깊게 숙였다.
진사통 근처에 도달한 어머니는 밭담 아래에 물허벅을 숨겨놓는다.
어머니는 옷 매무새를 고쳐 형과 함께 길 가는 행인처럼 걸으며 진사통 주변을 살폈다.
진사통을 지키던 청년들은 추위에 직분을 망각한 체 어디론가 사라져 없다.
어머니와 형은 거친 호흡을 손으로 막으며 조용조용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날에는 형은 승리한 선수처럼 한껏 우쭐거렸고 어머니는 부엌 한 구석에서 물항에 물을 채우며 몰래 눈물을 훔쳤다.
겨울 가뭄이 극심 할 때에 다른 마을 사람들도 힘들 것은 마찬가지였다.
눈이 소복이 쌓인 날 한 낮이면 어머니들은 물허벅을 지고 해안 빌레로 나갔다.
깊게 패인 빌레(암반)에 눈이 녹아 고인 물을 찾아 국자로 물허벅을 채웠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지붕개량 사업이 시작되었다.
우리 집 지붕도 초가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변했다.
지붕 둘레에 물 유인관(물홈)을 설치하여 빗물을 물통으로 모았다.
물통은 마루보다 넓고 내 키 몇 배 깊었다.
그때부터 요즘 마이카 처럼 집집마다 마이 물통이 생겨났다.
우리는 물통에 빨간색 금붕어 한 마리 노란색 금붕어 한 마리를 키웠다.
어느 날 금붕어가 원인 모르게 죽은 채 떠올랐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물을 마시지 못하고는 본인만 그 물을 마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에게 마셔도 좋다고 허락했다.
주민들은 물 사용이 편리해지자 습지 물통들은 방치되었다.
맑던 물은 병자의 눈처럼 흐리멍덩하고 수련 사이로 농약병이 등등 떠다녔다.
우리는 우리 생명의 근원이되는 습지 물통을 버린 것이다.
습지 물통 덕분에 우도에 사람이 살 수 있었음을 망각했다.
어머니와 습지는 닮았다.
어머니는 나에게 생명을 주셨고 습지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다,
어머니도 습지도 주기만 할 뿐 바라지 않았다.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느 날 TV에서 슬레이트 지붕이 철거 되는 뉴스를 보았다.
슬레이트 원료인 석면이 발암물질이란다. 그것도 1급 발암물질이다.
우리는 1급 발암물질로 만든 슬레이트를 씻고 내려온 빗물을 마신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발암물질에 내주었다니 어처구니없다.
편리함에 물들어 자연을 멀리하는 우를 범하고 있던 것이다.
습지물통 진사통이 지금의 상수도 만큼 위생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슬레이트 타고 내려온 물처럼 발암물질을 운운할 정도로 인체에 해로운 물은 아니었다.
집마다 개인 물통이 생기면서 우도에 있던 습지물통들 대다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 버렸다.
물통 이름이 마을이 된 '예물' 등 사람들에 위해 메꿔져 도로, 주차장으로 용도가 바뀌어 버렸다.
진사통처럼 역사적 의미가 있는 습지 물통 몇 곳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습지물통이 주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 만 공급하는 기능만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어릴 적 우리는 습지물통에서 개구리, 맹꽁이, 물방개를 잡다가 물뱀이 나타나면 뒤도 안 보고 도망쳤던 추억이 있다.
크고 작은 습지가 메꿔져 사라져 버린 동네에서는 맹꽁이 소리도 물 위를 S자로 헤엄치는 물뱀도 더 이상 볼 수도 없다.
우리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었고 생물들에게는 공존, 공생을 제공하던 소중한 가치를 지닌 습지가 인간이 편리함에 밀려 하나 둘 사라져 버리고 있다.
이런 변화들이 혹시 우리가 발암물질 슬레이트에서 흘러 내려온 물을 마시면서 습지를 메꾸어 버린 것 같은 우를 범하고 있는 것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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