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의 마을 동회천 새미물과 안새통못
시원의 마을 동회천 새미물과 안새통못
2024. 07. 24
글/사진_습지블로그 서포터즈 양정인
안새통못과 새미물을 품고 있는 새미숲 들머리
제주시 회천동 2390-4
마을 곳곳에 맑은 샘이 솟아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규모가 작은 마을이지만 2010년경에 신석기시대의 유구와 유물이 대거 발굴되면서 기원전 4500~3500년 무렵에도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걸로 추정되는 시원의 마을이다. 일찍이 샘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된 곳인 만큼 그에 얽힌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가 풍성하다.
새미물은 중산간동로와 생목수원로를 접한 도로변, 새미숲과 화천사 사이에 있다.
제주는 화산섬이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중산간에 물이 귀하고 용천수도 귀하다.
대부분의 용천수는 해안가에서 솟아나고 그래서 해안가를 중심으로 마을이 번성했다. 회천동은 중산간에서는 드물게 용천수가 솟아나는 마을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까지도 마을 형성의 중심이 된 새미물에서 유래했다.
새미물은 새미숲 주변 화천사라는 절 부근에 있는 석벽에서 솟아나는 용천수이다.
새미물 입구의 안내표석에는 동회천 샘물의 내력을 밝히고 있다.
<이 물은 순수한 자연생수로 60년대 중반까지는 식수로 사용하여왔고 지금도 음료수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해서 이 마을에서는 미인과 훌륭한 인물이 많이 탄생하였고 무병장수하였다는 것이 여러 가지 고증과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이 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끊임없이 흘러 시원함과 그 맛은 한번 마셔 보면 가히 천하일수라 아니할 수 없다. 주위 약 7천여 평에는 기암괴석과 30여종의 수목이 울창하여 그 경치 또한 장관이며 바로 우측 화천사 뒤편에는 자연석불이 웅장히 서 있어 이 마을을 지켜 주고 있다.
정확한 연대는 미상이나 주위에 산재되어 있는 오씨집터, 절터, 특히 지샛터에서 토출된 기왓장 등을 감정해 볼 때 약 600여 년 전 이씨조선 창건 당시 고려 충신이었던 홍좌수, 현반수 등이 이 물을 기점으로 설촌, 마을 이름을 泉味(새미)라 불러오다가 1913년 回泉里에서, 1955년 洞으로 개칭하게 되었음. 환경조성 1988년 5월 回泉(새미)洞民 일동>
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한 새미물 너머로 새미숲 경계와 화천사 절이 보인다.
새미물은 식수전용으로 물 오염을 막기 위해 빨래터를 갖고 있지 않다. 빨래터는 새미물 건너편 아래쪽에 있는 알석회통이라는 물통의 물을 사용하였다.
새미물의 용도는 식수 외에도 절에서 이용하기에 절물, 치성 때 쓰인다고 할망물이라 부르기도 했다. 때로는 부정을 씻어내는 정화수, 병을 고치는 약수, 마을의 번영을 위한 제수가 되는 신성한 물이었다.
마을에 수도가 들어오기 전에는 미인을 배출할 정도로 천하일수로 여겼다고 하지만 지금의 새미물은 많이 혼탁해 보인다. 안내표석을 만들던 1988년도에도 음용수로 적합하다고 적혀있는데 그때의 새미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은 농약이나 비료 성분이 스며들어 음용수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주변 바위에는 이끼가 가득 끼어 있다. 옆으로 중산간동로와 생목수원로로 연결되는 도로가 나 있어 산물 터가 많이 줄어든 듯 다소 위축되어 보인다.
역적수월이라고도 불리던 새미숲
새미숲은 제주의 다른 곶자왈에 비해 2~30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숲이지만 울창한 난대수림을 이루고 있다. 종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예덕나무, 멀구슬나무, 가는쇠고사리 등이 우거진 전형적인 제주 곶자왈의 모습이다.
새미숲의 다른 이름은 역적수월이라는 생경한 이름이다. 나라에 반역을 저지른 그 '역적'을 의미하는 걸까? 숲과 샘이 있는 곳에 어쩐지 어울리지 않은 이름에 한껏 궁금증이 생긴다.
표지판의 내용을 보면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창건되자 고려 충신이었던 현반수와 홍좌수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새미숲에 성을 쌓아 저항했다고 한다. 그들은 사병을 두고 관에 바치는 진상품 등 공물을 빼앗기도 했는데 조선 관청의 입장에서는 반역이 되었기에 군사를 동원해 소탕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역적이 살았던 숲이라 하여 역적수월이라 불리게 되었다.
수월은 제주어로 '숲'을 뜻한다.
구실잣밤나무 맹아
햇살이 쏟아지는 한낮인데도 상록활엽수림이 우거진 숲길은 어두침침하다.
마을과 가까운 중산간 곶자왈이 그렇듯 밑동을 잘라 쓴 나무들의 맹아가 발달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숲길을 걷다 보니 희귀식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밤일엽 군락이 곳곳에 많이 보인다. 잎이 하나씩 나는데 밤나무 잎처럼 생겼다고 해서 밤일엽이다. 곶자왈의 움푹하고 그늘진 바위틈에서 자라는 상록성 양치식물이다.
안새통못
상록활엽수 낙엽들이 푹신하게 깔린 숲길을 걷다보면 안새통못 표지판이 보인다.
그러나 별다른 안내문이 없어 연못의 용도나 만들어진 시기는 알 수가 없다. 연못에는 개구리밥이 가득 뒤덮여 있어 수심이나 수질을 짐작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용천수인 새미물과 달리 안새통못은 빗물을 받아 사용하는 봉천수로 조성된 연못으로 보인다.
연못 주변에 돌담이 둘러져 있는 걸 보면 과거에는 마소를 먹이거나 마을의 생활용수로 요긴하게 쓰였던 장소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대숲이 우거진 새미숲 산책로
안새통못이나 새미물 주변, 새미숲 산책로에도 대숲이 우거져있다.
대나무로 유명했던 이곳의 옛 명성의 흔적이다. 이 마을의 대나무(솜대)는 예로부터 질이 좋기로 유명해서 아랫 마을 맨촌 사람들이 이곳 대나무를 대대적으로 사갔다고 한다. 맨촌은 지금의 도련2동으로 명품 대그릇을 생산했던 마을이다. 그 유명한 맨촌구덕과 맨촌차롱의 재료가 된 대나무가 이 마을에서 생산된 대나무이다.
작지만 깊은 새미숲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마을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4·3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마을 역시 소개령으로 사라질 뻔 했지만 다시 재건된 역사가 있다.
굽이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신비한 작은 숲과 산물은 그 모든 걸 지켜보며 의연하게 그 자리를 지켜왔다는 것에 새삼 고개를 숙이게 된다.
신령한 숲, 신령한 물이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를 잘 지켜주며 마을과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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