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2026 세계 습지의 날 기념 ④

습지는 생물들의 ‘곳간’


[특별기고] 2026 세계 습지의 날 기념 ④

필자는 물이 귀하던 유년기 시절을 지나 상수도 보급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삶의 대부분은 상수도가 보급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과거 습지에 의존해 살았던 일부의 시간들은 습지를 깊이 각인시켰다. 현재 습지와 관련된 일을 현장에서 수행하고 있으며, 물의 가치를 겪었던 경험은 현장과 생활에서 크게 작용한다.

2025년도 ‘제주시람사르습지도시 지역관리위원회’에서는 교래에 있는 산지형 습지를 주민들과 모니터링하였다. 이 습지는 항시 습윤한 상태를 유지하는 독특한 수문 환경을 지닌다. 강우시 높은 지형에서 경사를 따라 물이 흘러 내려 평탄한 지형에 이르러 형성된 습지이다. 수분이 축적, 체류되는 곳으로 생태적 기반을 제공해 생물다양성의 공간으로 보전과 관리의 중요성이 큰 곳이다.  

1년 동안 모니터링 현장에서 마음에 걸리는 장면들도 있었으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 다른 생명들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5월은 비가 많아 수위가 높아 질퍽거렸고, 장화 속으로 탁한 물이 스며들 때마다 이탄습지 특유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어떤 주민은 이런 곳도 습지인지 왜 중요한 지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그 해답은 생물들을 관찰, 기록하고 세밀화를 그리며 인간과의 연결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5월 관찰모습. 사진=김정자
5월 관찰모습. 사진=김정자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은 습지는 깊이를 알 수 없었고 조심스럽게 관찰해야만 했다. 식물에 집중하느라 방심하고 있는 순간 장화 위를 스르륵 넘어가던 유혈목이의 감촉은 잊을 수 없다. 침입자로 여겼을 유혈목이가 코브라처럼 부풀리며 방어하는 모습은 한 동안 인상적이었다. 또한, 포란하던 꿩이 놀라 급히 날아오르는 순간은 설명하기 어려운 미안함이 오래도록 남았다. 싱그러운 습지 식물들 사이로 내민 보랏빛의 ‘꽃창포’의 암술은 오묘한 아름다움이었다. 안개꽃처럼 피어나는 ‘감자개발나물’꽃은 순수함 자체였으며, ‘꽃며느리밥풀’은 벌어진 꽃잎 사이로 드러난 흰 부분이 며느리 입술이 밥알을 물고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난감한 모습과 닮았다. 6월은 서둘러 꽃이 피는 고산습지 식물들이 천상 화원의 모습으로 보물창고와 같았다. 

유혈목이. 사진=김정자
유혈목이. 사진=김정자

관찰시기를 노칠 새라 바빠진 어느 날, 붉은 마대와 괭이를 둘러멘 낯선 사람의 이상한 행동이 포착되었다. 몇 미터 앞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는 자생지 파괴이며 생물다양성을 이어주던 연결고리마저 흔들리게 하는 것이다. 지역주민의 관심과 선진적인 주민의식이 절실히 필요함을 실감했다.

12월을 마감으로 새싹에서 열매까지 모니터링은 끝이 났다. 1년 동안의 관찰 기록들은 ‘교래물뱅듸식물목록’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현재 관리시스템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워 적극적인 감시를 하고 있으며, 퇴적물이 쌓여 육상화가 되어가는 습지에 물을 자연스럽게 채우는 과제가 남아 있다. 

씨앗 관찰. 사진=김정자
씨앗 관찰. 사진=김정자

2월2일 습지의 날을 계기로 습지와 관련된 기념일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세계 물의 날, 세계 철새의 날, 세계 환경의 날, 맹그로브 생태계 보전의 날, 세계 강의 날, 세계 서식지의 날 등 그 수는 적지 않다. 이처럼 습지와 연관된 기념일이 유독 많은 것은, 습지가 수많은 생명과 인간 사회를 이어주는 핵심적인 매개체이면서도 개발과 기후 변화, 오염 등으로 그 기능과 자원이 끊임없이 훼손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자 생태관찰자.
김정자 생태관찰자.

람사르협약메뉴얼에는 ‘습지는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자연환경 중 하나이다.’라고 나와 있다. 필자는 이 문장에 깊이 공감한다. 또한, 습지는 생존에 필요한 물과 1차적인 생산성을 제공하며 다양한 동식물의 생명을 지원 한다.

2월은 세계 습지주간이다. 이 의미 있는 시간을 계기로 습지복원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 김정자 생태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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