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2026 세계 습지의 날 기념 ③


세계 습지의 날에 되새겨보는 제주 선인들의 물 문화




[특별기고] 2026 세계 습지의 날 기념 ③

어릴 적 할머니네 집을 가면 마당 한쪽 동백나무 밑에 큰 항아리가 여러 개 있었다. 난 ‘항아리 안 멘주기(올챙이)’, ‘독 안에 든 개구리’ 잡는 맛에 그 근처를 자주 들락거렸다. 잎이 넓은 나무 둥치에 ‘새(띠)’를 댕기 머리처럼 엮은 ‘ᄎᆞᆷ’을 놓아두면 빗물이 ‘ᄎᆞᆷ’을 타고 항아리에 담기게 되는데, 이물을 ‘ᄎᆞᆷ물’이라 했다. 이 ‘ᄎᆞᆷ물’을 받아둔 항아리가 바로 ‘ᄎᆞᆷ항’이다. 

상예1동 남바치물(왼쪽)과 성천답관개유적비(星川畓灌漑遺蹟碑) 뒷면. ⓒ제주의소리
상예1동 남바치물(왼쪽)과 성천답관개유적비(星川畓灌漑遺蹟碑) 뒷면. ⓒ제주의소리

할아버진 수감(水監)이셨다. 일종의 물 감독관인 수감은 과거 물, 특히 농업용수가 귀했던 제주 지역에서 물을 고르게 분배하고 관리하던 ‘수리계(契) 관리인’을 뜻한다. 지질 특성상 물 빠짐이 좋은 제주도의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농업용수를 통제, 관리하기 위해 마을 단위로 수감을 두었다. 마을 수리계에서 선출된 수감이 물 대기를 관리하고, 용천수나 수로를 통한 농업용수를 통제하거나 배분했다. 

1917년경 중문 천제연 관개수로(성천 답수로) 공사 후, 주민들이 ‘성천답회’를 만들어 물 관리자로 수감을 두었고, 수고비로 1년에 논 한 마지기(약 200평)의 쌀을 주었다고 한다. 그 바로 옆 마을에 살았던 우리 할아버지가 그 정도 받았다는 말은 아니다.

사진 왼쪽은 동백동산 습지, 논골(동백동산습지조사단, 2017). 오른쪽은 한남리 머체왓 소(沼). ⓒ제주의소리
사진 왼쪽은 동백동산 습지, 논골(동백동산습지조사단, 2017). 오른쪽은 한남리 머체왓 소(沼). ⓒ제주의소리

선흘리 상동 주민들은 1938년 봄, ‘용수접(接)’을 결성했다. ‘용수접’이란 지표수나 용천수가 없을 때, 식수로 사용하거나 소나 말이 먹을 물로 사용하기 위한 용수(用水)를 만들 때 협력하는 일종의 계(契)를 말한다. 

제주의 마을은 용수를 관리하는 몇 개 공동집단으로도 나뉜다. 인근 주민끼리 땅을 내놓거나, 인력을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소들이 물을 먹을 때 사용할 연못이나 물통이 없을 때, 마을 내 몇몇 가구들이 모여 소 물 먹일 만한 곳을 만들기 위해서 협동했다. 마을 사람들이 먹을 식수를 개발하기 위해서도 모였다. 

마을마다 용수 확보가 어려운 문제였다. 중산간 마을에서 물을 구하는 방법은 ‘소(沼)’에 고인 물을 긷거나, 물통을 파서 봉천수를 이용하거나, 비가 올 때 나무를 타고 내리는 빗물을 모으는 ‘물’이다. 해안 마을에서는 용천수나 ‘소(沼)’, 통물을 만들어 이용했다.

사진 왼쪽은 광평리 행기소, 오른쪽은 영남리 우물. ⓒ제주의소리
사진 왼쪽은 광평리 행기소, 오른쪽은 영남리 우물. ⓒ제주의소리

중산간 마을의 물은 하천수, 봉천수, ‘물’ 등으로 나눌 수 있지만, 어차피 수원(⽔源)은 모두 빗물이다. 취수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제주 사람들은 중산간 지대에 고인 지표수를 ‘죽은물(死⽔)’이라 했으며, 지하에서 솟는 샘물이 외부 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약 15도로 상온이기 때문에 ‘산물(생물, ⽣⽔)’이라 불렀다. 

봉천수인 물통은 크게 하나만 파서 물을 담아 두기도 하였지만 두 개 혹은 세 개씩 파서 용도에 따라 관리하였다. ‘구진물’이라 부르는 용수통과 ‘곤물’인 식수통을 쓰임에 따라 별도로 마련했다. ‘구진물’은 마소들이 먹는 물로 쓰거나 목욕물로 사용했고 ‘곤물’은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다. 물통에 담긴 물을 깨끗이 유지하려고 주변에 나무를 심고 흙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돌을 돌려 박았으며, 물을 긷거나 빨래하기 편하도록 시설들도 갖추었다. 또 식수로 사용되는 물통 주위에 마소가 접근하지 못하게 나무를 심어두거나 담을 둘렸다. 물통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수위에 따라 물을 기를 수 있게 했다.

선흘 동백습지에서 논농사를 지었다는 이만재논(사진 왼쪽)과 웃새물. ⓒ제주의소리
선흘 동백습지에서 논농사를 지었다는 이만재논(사진 왼쪽)과 웃새물. ⓒ제주의소리

제주 중산간 마을에서도 큰 규모는 아니지만(크면 1000평 작으면 300평 정도), 늪지나 물통, 고인 지표수 등 천수(天水)를 이용하여 논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논농사 지을 만큼 물이 풍족하지 않은 지역이지만 제사나 명절 때 상에 ‘곤밥’을 ‘메(젯밥)’로 올리려고 ‘나록’이라 불리는 논벼(수도, 水稻)를 재배했다.

용천수가 있는 유수암과 염돈 만이 아니라 습지와 물통이 많았던 선흘과 금악, 심지어 소(沼)나 저수지가 있던 영남동과 광평리 조가동 등의 돌랭이논, 살레논에서 일부 계단식 논농사를 지었다.



진관훈. ⓒ제주의소리
진관훈. ⓒ제주의소리

재재작년부터 중산간 마을 중심으로 화경(火耕) 농업뿐 아니라, 중산간 마을 여성의 일 역할과 물 문화, 원(原)경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조사팀과 같이 중산간을 누비면서 매번 느끼는 점은, “제주 선인들은 모두 다 전문가다!”라는 사실(史實)이다. 웬만하면 수준급 ‘돌챙이’고, 누구나 다 ‘물 소믈리에’다. 이제 우리는 제주 선인들의 지속 가능한 물 관리 비법과 물 문화를 기록하고 콘텐츠화하여 K-컬처 (K-Culture)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도록 애써야 하겠다. /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 진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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