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봉천수 하가리 연화지(연화못)
제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봉천수
하가리 연화지(연화못)
2024. 12. 04 (수)
글/사진_습지블로그 서포터즈 유명숙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고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연화지는 제주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는 봉천수.
오래전 제주는 물이 워낙에 귀하다 보니 중산간 지역에서는 내리는 빗물을 가두어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연못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인위적으로 만든 연못을 ’봉천수‘라고 한다.
물 위를 가득 덮은 연꽃을 보려고 연화지를 찾는 관광객과 제주도민들이 참으로 많았었다.
현재는 수질악화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하여 연꽃은 사라지고 없다.
잔뜩 흐린 날에 방문했지만 한적하고 쾌적한 연못의 풍경에 저절로 걸음이 멈춰지는 이유
내가 좋아하는 반영을 실컷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큰 연못에 연꽃은 전혀 없지만 작은 연못에 혹시 늦게 피는 수련꽃이 보일까 한참을 찾아보았는데 역시 수련은 계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꽃은 보이지 않았다.
8월 더운 여름날에는 보았던 꽃을 기억으로 그려보면서 둘러 본다.
연못 정화를 위해 인공 수초섬(식물섬)들과 녹조 발생 억제를 위한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거리가 있다보니 자세히 볼 수 없어 어떤 수초들인지 확인을 하지는 못했다.
겨울이 아닌 계절에는 확인 할 수 있으려나 !!
노랑 부리를 가진 대백로 한 마리와 흰뺨검둥오리?로 보이는 녀석들이 유유히 물 위를 헤엄쳐 다니기도 하고, 부지런히 먹이 사냥을 하는 모습이 보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흰뺨검둥오리들은 여러 군데 있는 걸 보니 이곳의 환경에 적응이 되었다는 것이고, 생태가 살아나고 있다는 의미가 되니까 말이다.
전에도 여러번 연화지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안내 팻말이나 표지석을 자세히 본 적은 없고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연꽃들만 감상 했었기에 요번에는 안내문 들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고려시대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오는 바람에 연화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고려 25대 충렬왕(1275~1309) 때에 마을 연화지는 산적들의 집터였다. 연못 한 가운데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이 연못에 딸린 작은 못 중 하나인 샛물통에는 작은 초막을 지어 살면서 마을을 지나는 행인들의 제물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신임판관이 초도 순시차 이곳을 지나갈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산적들은 판관 일행을 습격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 마을에 사는 ’뚝 할망‘이 이 사실을 눈치채어 산적들의 흉계를 관가에 알리게 되었고, 이에 관군이 출동하여 산적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뚝 할망‘ 칼에 맞아 죽었다. 관가에서는 할머니의 충성심을 높이 기려 벼슬을 내리고 제주향교에 제신으로 받들게 했다.
그 후 움푹 패인 산적의 집터는 마소의 물을 먹는 못으로 활용 되었다.
연화지는 선인들의 혼과 정성, 전설이 깃들인 연못으로 고려시대에는 작은 연못이었으나 17c중엽에 대대적인 수리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의 연못 중 서남쪽에 있던 작은 연못은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되었고, 넓은 못은 우마의 급수와 주민들의 빨래터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1950년에 2년간의 대대적인 제방공사를 시행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안내표석 참고
연혁 내용 중에 1949년 ’재부산친목회‘에서 연꽃 식재라고 되어 있는 걸 보니 그 이전에는 연꽃이 없었다는 것인가??
어쩌면 연꽃이 사라진 덕분에 이곳을 터전으로 다양한 동식물, 곤충들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습지에 사는 동.식물-수련, 수초, 대백로,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등
*주차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로변에 주차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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