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꽃비 내리는 핫플 연못 대흘1리 큰물

 봄에는 꽃비 내리는 핫플 연못

대흘1리 큰물


2024. 08. 21

글/사진_습지블로그 서포터즈 이주형


작은 연못이 봄만 되면 북적거리는 연못이 하나 있다. 대흘보건소 진료소와 대흘1리 복지회관 옆에 있는 작은 연못이 언젠가부터 벚꽃 명소로 자리 잡았는데 어쩌다보니 나는 처음 방문한다. 원래는 지금 연못 크기보다 컸으나 도로 확장 등으로 크기가 축소된 물통이다. 동쪽 중산간 지역으로 이동할 때 자주 지나던 도로였는데 제대로 본 적 없던 곳을 습지 핑계삼아 다녀왔다.(사진촬영일 : 2024년 8월 18일)




대흘1리 큰물

많은 물이 고인다고 하여 큰물이라 불리었고, 마을 가운데에 있어서 생활용수와 우마용으로 이용되었다. 과거 아이들의 물놀이 장소였으며, 개구리와 잉어, 마름 등 동·식물의 서식지이기도 했다. 도로 확장 등으로 면적이 1/3 정도만이 남아 있다. 도로를 접하여 나무 데크 시설이 되어 있고, 리사무소쪽 도로변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물통안에는 분수 시설과 조명 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사용하지 않고 있다. 왕벚나무가 꽃을 피우는 4월이면 연못 위에 연분홍 벚꽃이 수를 놓는다.

✅ 주소 : 대흘리 2237-12번지
✅ 마을에서의 위치 : 리사무소와 접해 있음
✅ 가로/세로 : 가로 25m, 높이 15m의 삼각형
✅ 면적 : 약 190.15
✅ 주민 생활과의 관련성 : 생활용수, 우마용
✅ 입구(소로길) 유무 : 중산간 도로변
✅ 동·식물 특징 : 산개구리, 제주도룡뇽, 마름, 개구리밥, 가래
✅ 특징 : 도로공사로 인해 면적이 1/3로 축소 됨
✅ 이름 유래 : 대흘1리 마을 내 물통 중 가장 큰 물통
*내용 출처 : 람사르 습지 도시 조천읍 습지 조사 자료집




중산간 마을에 위치한 대흘1리, 산세 좋고 숲이 우거진 듯한 곳인데 조금 느낌이 다르다. 
연못 주변에는 제법 큰 건물들의 카페, 음식점이 들어서 있었고, 연못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대흘초등학교와 그 주변으로 타운하우스가 조성되어 있어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중산간 마을과는 좀 다른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대흘초등학교 동쪽 삼거리의 큰 팽나무, 비석거리의 팽나무 등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 있어 오랜 세월이 묻어 있어 좀 더 풍성해 보이는 마을로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고 있는 마을처럼 느껴지는 대흘1리.



대흘1리 설촌유래 이렇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730년경에 유제륭(1684-1773)씨에 의해 설촌되었다. 유씨의 장손 유상훈씨의 말에 의하면 유씨는 무관으로 현신교사 훈련원검정의 벼슬을 지냈으며 90세까지 장수하여 돌아가신 후 숭정대부의 직함을 받으셨다고 한다.

왜 이곳에 설촌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해오는 이야기조차 들을 수 없었으나 유상훈씨는 "사냥을 즐기시다 수풀이 우거지고 땅이 기름질 뿐 아니라 산세가 좋으므로 이곳에 정착하게 된게 아닐까?" 하는 자신의 의견을 말씀해주셨다. 그 후손들은 3대에 걸쳐 100여년동안 살다가 모두 대흘리를 떠나게 되었으며 지금은 제주시, 한림, 함덕, 애월 등지에 살고 있으며 본리에는 한 사람도 살고 있지 않고 대흘리에 유제륭 할아버지의 2개의 묘소가 있을 뿐 그 외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근래에 와서야 묘소 관리를 위해 약간의 밭을 산 것뿐이다.
유씨 후에는 백선달이라는 분이 마을을 다스리게 되었는데 아주 근엄하시어 큰 팡돌(큰 방석처럼 생긴 돌)에 앉아 있으면 어느 누구도 그곳을 지나갈 수 없어서 길을 멈추었다고 한다. 그 후손은 조천에 살고 있으나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고 김창호씨께서 말씀해 주셨다. 
백선달 후로서 입촌하게 되었으며 부씨의 후손들은 대흘1리에 가장 많이 살고 있으며 이어 차씨, 김씨, 송씨, 한씨 등이 자리를 잡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내용 출처 : 대흘1리 복지관에서 연못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던 대흘1리 설촌유래 설명 표지판


정비된 도로 바로 옆에 있어 차로 지나던 길임에도 인지 못하고 쓰윽~ 지나쳤던 곳이다. 지금은 도로 공사를 진행 중이어서 연중 공사를 하는 건가 싶을 만큼 계속 뭔가를 정비 중인 곳!




한여름 뙤약볕의 평일 오후의 길거리는 걷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벚꽃 시즌도 한참 지난 한여름의 큰물에는 방문하는 이 하나 없이 조용하다. 정자에서 머무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사시사철 흘러가는 강물이나 시냇물이 드문 화산섬 제주도. 
그래서 물이 부족한 지역이었지만 한라산에서 내려오면서 스며든 빗물들이 오랜 세월 동안 흘러 지하수로 변하고 그 지하수가 해안가로 이르러 퐁퐁 샘솟는 용천수가 된다.
제주도는 그 용천수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에 반해 용천수가 드문 중산간은 대부분이 봉천수(奉天水) 물통이다. (땅을 깊이 파내) 빗물을 고여서 이루어진 물통은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해 왔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했던 귀한 물통과 용천수. 예전 대흘리 마을 분들도 물통의 물을 이용해왔을 터인데 생각보다 작은 연못이었다.
'이 작은 물통으로 어떻게 마을 사람들 전부 이용했을까?' 싶었는데 도로 정비 등의 이유로 1/3로 축소된 물통이라 한다. 
제법 큰 봉천수였다는 걸 알고 이제야 납득 중이다.



데크와 난간, 야간경관 조명 등 사람이 찾아와 잘 이용할 수 있는 이용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연못을 둘러볼 수 있는 데크 길 위로 쭉 이어진 조명. 낮보다 밤에 눈에 더 잘 띄겠다 싶다.
제법 잘 갖춰진 시설에 비해 오랜 세월 생활용수와 우마용, 물통으로 사용했던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있을텐데~ 큰물에 대한 설명이 없어 좀 아쉽긴 하다.



최근 비 소식보다 햇빛 쨍쨍으로 이어져 연못의 물은 그리 높지 않았고 맑은 듯 탁해 보이는 연못의 수질 때문인지, 마름만 일부 보일 뿐! 생각보다 눈에 띄는 동식물이 없다. 큰물이 이곳에서 오랜 세월 있었다고 생각하면! 지금은 작은 연못이지만, 동식물로 뭔가 풍성한 연못일거라 상상했었는데 오히려 너무 깔끔해 보여 습지를 보는 즐거움이 줄었다.
연못 안쪽에 분수 시설 등이 보이는데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한쪽은 담벼락이 큰 돌담처럼 쌓여있고 그 주변으로 식물들이 자라고 있으나 연못내 수생식물은 마름만 드문드문.

수생식물이 보이질 않는다
       
데크와 도로변 사이 틈에서 보이던 마름

그래도 새들이 날아와 연신 벌레를 잡아 먹고 물을 마시는 듯 보였다. 이제 가을이 가을 소식을 알려주는 듯 잠자리도 왕성하게 날아다녔다.



도로 정비로 축소된 큰물은 1/3이라도 남아 있는 상태지만 대부분의 물통은 무분별한 개발로 사라지고 있다. 물은 지하수를 퍼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손쉽게 사 마실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이제 먹는 물, 봉천수는 없다. 옛 선조들이 귀하게 여기며 아껴 사용하던 제주의 지하수와 빗물을 이젠 그냥! 사용만 한다. 이렇게 사용만 해도 될까?

대한민국은 물 부족 국가는 아니지만 물 스트레스 국가에 해당한다. 물을 사용하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주기적으로 가뭄을 경험한다. 강수량은 충분하지만 여름에만 집중적으로 내리고 대부분 바다로 흘러 들어가 다른 기간에는 가뭄에 취약한 나라가 우리나라. 이젠 개발보단 사람과의 공생, 물의 보호 및 보존이 필요한 시기.
개발은 쉽고 빠르지만 복구와 회복은 세월이라는 셈이 더해져야 해서 가능하기 때문에 개발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느리다. 그래서 제주의 봉천수, 물통들을 잘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 작은 연못 큰물이 꽃비내리는 봄에라도 핫플인게 좋다! 오래도록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면 관리에 신경을 쓸 것이고, 그 관리가 자연스럽게 동식물들의 보존으로 이어질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오래도록 핫플레이스로 남길 바라는 
대흘1리 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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