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과 사람이 함께 마시는 치유의 물, 절물 약수
물이 있는 곳엔 항상 새들이 날아든다. 심지어 비온 뒤 일시적으로 생긴 물웅덩이에도 새들이 내려앉아 목을 축이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러니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샘솟는 물이란 야생동물에게나 인간에게나 얼마나 소중한 것일까.
약수터에는 검은머리방울새 , 되새 등 다양한 철새와 텃새들이 날아든다. |
약수터 근처에는 절물 약수의 약효가 적혀진 안내문이 보인다. 이곳에서 솟는 용천수는 신경통과 위장병에 좋아 약수로 이용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화산토와 암반을 거치며 함양된 제주의 물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인 다양한 미네랄이 풍부하다. 임상적인 증명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 그 장소에 머무는 동안 몸과 마음에 생기가 솟고 충만해지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약수가 달리 약수일까. 잘 보전된 자연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큰 치유와 생명의 원천이 아닐까 싶다.
절물이란 이름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절이 있었기에 ‘절 가까이 있는 물’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절물 가까이에 약수암이란 절이 있다. 약수는 절물 오름의 봉우리인 큰 대나오름 기슭에서 자연 용출되어 나오고 있다. 물이 귀한 제주에선 용천수는 살아있는 ‘산물’로 특히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이 마르지 않고 샘솟는 것만으로도 ‘약수’ 대접을 받을만하지 않은가?
절물 유래 안내문에는 용천수가 신경통과 위장병에 효과가 있다고 적혀있다. |
예부터 제주에선 부녀자들이 음력 칠월 보름날인 백중날에 ‘물맞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날 물맞이를 하면 신경통, 허리병, 위장병, 냉병, 부스럼 예방 등 만병에 약이 되고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절물 역시 사람들이 찾아와 물맞이와 위장병 등을 치료하는 약수물로 유명했다.
절물 약수는 아무리 날이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사시사철 흘러나오는 깨끗한 물이다. 조선시대에 가뭄이 들어 동네 우물이 모두 말랐을 때에도 주민들 식수로 이용했을 정도로 풍부한 수량을 자랑한다. 지금은 풍부한 물을 이용해 연못과 산책로를 조성하고 휴양림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식의 장소가 되었다. 봄을 맞이한 연못 주변 수로에는 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이 많이 보인다. 도롱뇽은 1급수의 청정한 물에서만 볼 수 있기에 도롱뇽 알이 많은 습지를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절물자연휴양림 수로에 반영된 울창한 삼나무 그림자와 개구리 알. |
절물자연휴양림 수로에 보이는 도롱뇽 알. |
절물오름은 말발굽형 오름으로 큰 대나오름과 족은 대나오름 두 봉우리가 있다. 절물오름 아래 위치한 절물자연휴양림은 우거진 삼나무와 곰솔 조림지에 자연림이 어우러져 있다. 주종인 삼나무와 곰솔 외에도 올벚나무, 산뽕나무 등의 나무와 더덕, 두릅 등의 나물종류도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고, 큰오색딱따구리, 까마귀, 섬휘파람새 등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봄이 오는 절물 습지 주변엔 개구리발톱, 벌깨냉이, 산괭이눈, 좀현호색 등이 꽃을 피운다. |
절물 약수 주변 올벚나무에 동박새 무리가 날아든다. |
봄이 오는 절물 약수터 주변에는 꽃망울을 터트린 벚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동박새들이 몰려와 만개한 꽃송이 사이를 오가며 꿀을 빨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받침 통이 호리병처럼 볼록한 올벚나무들이다.
제주에는 왕벚나무, 올벚나무, 산벚나무, 섬개벚나무, 산개벚지나무 등 다양한 벚나무들이 있다. 제주에선 이들을 구분 없이 통틀어 '사옥' '사오기'라 불렀는데 나무의 질이 좋아 고급 목재로 인기가 높았다.
제주 자생인 왕벚나무의 모계가 올벚나무라 그런지 올벚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왕벚나무가 있는 주변에서는 항상 올벚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작은 동박새들이 부리에 노란 꽃가루를 묻혀가며 꽃과 꽃 사이를 드나들어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어떻게 보면 천지창조의 순간만큼이나 역사적인 시공간이다.
올벚나무의 특징은 꽃받침통이 호리병처럼 볼록하다. |
올벚과 산벚의 교잡종으로 탄생한 왕벚나무는 풍성한 꽃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식물이 유전적 다양성을 선택하는 이유는 환경변화나 병충해 등에 적응하기 위해서이지만 그 결과가 참 신비하고 아름답다. 시간과 공간의 절묘한 만남으로 태어난 왕벚나무는 제주 한라산 기슭에서만 볼 수 있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개체가 되었다.
이런 나무와 새들과 더불어 살아 숨 쉬는 봄날이란 얼마나 경이로운가! 이들과 어우러진 숲에서 샘솟는 물 한 모금 마시는 순간에는 세상 모든 시름을 잊는다. 약수란 그렇게 탄생하는 게 아닐까.
(사진촬영 : 2024.04.01. 절물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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