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처럼 귀한 용천수


한라산의 지하수가 해안가에서 다시 솟아오르는 것을 제주에서는 '용천수'라고 한다.제주는 화산섬이 지닌 특수한 지질과 지형조건으로 연 강우량의 45%정도가 침투하는 특징이 있다.제주의 토양 모재는 화산쇄설물 송이(scoria)인데 물빠짐이 아주 좋다.

그 때문에 물을 머금지 못하는 제주의 하천 대다수는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이렇게 땅속으로 스며든 물은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른다.


"사람은 높은 곳을 향하여 달려가지만 물은 낮은 곳을 향해 아래로 흘러간다."
사람은 좀 더 높은 곳에 서려하고 물은 더 낮은 곳에 임하려 하는 자세 때문이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럽듯 사람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함 또한 인간스럽다.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 어찌할 수 없다.
이야기가 삼천포를 빠졌다.^^




한라산 정상 백록담 담수호(1940m)에서 땅속으로 스며든 물을 따라 가보자.
땅속으로 들어간 물은 지하 대수층을 따라 여행이 시작된다.
단단한 지층을 지날때는 몸을 한껏 조아리다 약한 지층을 만나면 암석 틈새를 비집고 나와 자유를 만끽하며 세상구경에 정신을 잃는다.
그 즐거움도 잠시 햇빛에 일광욕을 즐기던 물들은 깊게 파 놓은 함정에 빠지듯 다시 지하로 빨려 들어간다.
그렇게 솟아올랐다 빨려들어가길 몇 번 반복하다 해안마을에서 다시 솟아오른 지하수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가장 낮은 곳 바다에 이른다.
그렇게 그들의 본래 있던 곳에 도착하며 여행도 마무리 된다.
이 여행 기간이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정도가 소요 된다.


제주를 해발고도에 따라 세 구역으로 나눈다.
해발고도 200m이하 지역은 ‘해안’ 200m 이상 600m 미만은 ‘중산간’ 600m 이상은 ‘산지’로 부른다.
제주의 용천수 대부분은 해안에 발달되어 있고 이런한 곳을 '용천대'라 한다.
모든 인류가 그러했듯이 제주민 또한 용천대를 중심으로 모여살기 시작했다.
해안 지역에서 멀어질수록 용천수의 분포 비율은 낮아지며 그에 따라 마을이나 그곳에 거주하는 인구 또한 상대적으로 적었음이 이를 말해준다.

용천수는 제주도에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까지 제주민의 생명수 역할을 했다.
용천수는 단순히 식수로만 사용해온 것이 아니라 목욕이나 빨래, 가축용 등 일상생활에서 매우 다양하게 활용했다.
대다수 마을은 용천수가 나오는 곳을 세 구역으로 경계를 쌓아 물을 활용했다.
제일먼저 바위 틈에서 아기처럼 옹알옹알되며 막 솟아 나온 물이 나오는 주변에 돌로 담을 쌓았다.
이곳은 사람들이 식수로 이용하는 곳으로 가축등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여 청결하게 관리했다.
식수가 흘러 내린 바로 아랫칸은 빨래터로 이용할 수 있도록 주변을 정비했다.
그 아래는 가축이 땅을 파 물을 모아 가축이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제주민은 용천수를 단순히 물로 보지 않고 생명으로 보았기에 이렇게 손주처럼 아끼고 또 아꼈던 것 같다.



'옹포천'은 제주 서부 지역 최대의 용천수가 샘솟는 곳이다.
용천수뿐 아니라 지표수 또한 풍부한 옹포천은 주변 한림정수장을 통해 한림읍•애월읍•한경면 등 제주시 서부 지역의 상수원 역할을 하고 있는 중요한 식수원이다.
뿐만 아니라 여름철에만 개장하는 ‘옹포천어울공원’ 수영장은 옹포천 용천수를 이용하여 맑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이곳 물이 뛰어남을 증명하고 있는 곳이 하나 있다.
바로 제주의 대표 소주 ‘한라산 소주’ 생산 공장이 바로 이곳에 있다는 것이다.


소주는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로 나뉜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애용하는 소주는 희석식 소주다.
95%짜리 식용 엔타올(주정)에 물을 타서 만드는 것을 희석식 소주라고 한다.
주정은 100% 대한주정판매(주)에서 10여개 소주회사로 독점 납품하고 있다.
그러니 공급 받는 주정의 품질은 모두가 똑 같고 희석하는 물이 다를 뿐이다.


옹포천에서 솟아나는 물은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다는 사실은 검증 되었다.
특히 '바나듐' 성분이 높다고 한다.
바나듐은 인체 신지대사에 반드시 필요한 희귀 미네랄 원소란다.
혈당을 낮추고 콜레스테롤 합성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까닭에 한라산 소주가 제주민 뿐 아니라 전국민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맑은 물의 대명사였던 한림(옹포)수원지가 질산성질소에 오염되어 단계적으로 폐쇄던  적 있다.



금악리 “누운오름‘ 남사면에서 발원한 옹포천은 북서쪽으로 흘러 옹포리 해안으로 연결된다.
금악리는 양돈장이 밀집해 있는 중산간 마을이다.
제주도 전체 양돈농가의 20%정도가 이곳에 밀집해 있는 곳으로 제주 최대 규모이다.
2018년 상부지층의 축산폐수가 지속적으로 지하수로 유입되면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고 가볍게 말하며 넘길 문제는 아니다.
한림(옹포) 수원지는 정상화 되었지만 이렇게 질산성질소가 높게 검출되면서 폐쇄된 곳이 이미 4곳에 이른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가진 제주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재앙이다.
제주민 생사가 달린 문제이다.


제주는 내륙과 격리된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제주에서 발생하는 물 수요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용천수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바닷물을 담수화한 물을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을 맞이해야만 할 것이다.
지금 이용하고 있는 지하수도 또한 한정되어 있은 자원이니 만큼 개발•이용에 다시 한 번 지혜를 모아야한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한다." 라는 말은 우리의 생명수 용천수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뒤 늦은 후회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지하여 지금부터라도 용천수 보호에 힘써야 할 것이다.
용천수가 오염되면 덩달아 위험에 처할 수 밖에 없는 습지보호 또한 깊게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삽입된 사진은 옹포천 모습입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달을 비추어주는 습지 "월랑지와 월랑지알못. 그리고 버드나무습지 -성산읍 난산

오름 사이에 숨은 드넓은 이탄습지, 숨은물뱅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