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도 뼛속까지 시린 돈내코물


서귀포시 상효동 돈내코 계곡에 위치한 원앙폭포


글/사진 습지블로그 서포터즈 양정인


올여름은 유난히 길고 더웠다. 9월 중순까지도 열대야 현상이 이어졌다. ‘지구 온난화시대는 가고 지구 열대화시대가 시작되었다는 UN의 발표가 실감 나는 더위였다. 전국에 폭염 특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일하게 한라산만 제외되었다. 더위에 시달리다 청량한 공기가 간절해질 때, 한라산을 찾아 심호흡하고 나면 조금은 여름을 버틸 힘이 생기곤 했다.

큰비가 내리고 난 뒤에 한라산을 찾으면 온 산이 하나의 거대한 물그릇인 양 곳곳에 샘이 솟는다. 고원의 평지에서도 힘차게 내달리는 물줄기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한라산이 이렇게 물을 가득 품을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이 물이 지반으로 스며들고, 계곡을 따라 흐르고, 를 이루고, 용천수가 되어 제주 섬의 생명들을 살리겠지 싶다.


'돈내코'는 골짜기가 깊고 숲이 울창해
야생 멧돼지가 자주 물을 마시는 하천의 입구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돈'은 제주사투리 '돗(돼지)'의 변형이고, '내'는 '하천', '코'는 '입구'라는 의미다.


한라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생명수 역할만이 아니라 한여름 더위를 달래는 최적의 장소를 만들어 준다.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소는 서귀포시 상효동 해발 400미터 지역에 위치한 돈내코 계곡이다. 이곳은 한여름에도 수온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예부터 주민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즐겨 찾는 장소다.

백록담 남벽에서 발원해 흐르는 영천靈泉의 중류에서 솟는 돈내코물은 용출량이 풍부해 1932년에 간이수도로 개발해 상효리, 토평리, 신효리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기도 했다. 제주의 하천은 화산 지형의 특성으로 대부분 평상시엔 물이 없는 건천乾川이지만, 이곳은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 지금은 돈내코물이 흐르는 남쪽에 많은 양의 물을 이용해 돈내코 유원지가 조성되어 있다.

 

원앙폭포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절벽 사이 데크시설이 되어 있다.

처서가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날, 돈내코 계곡의 원앙폭포를 찾았다. 돈내코물은 하천 계곡을 이루는 암벽 여러 곳에서 솟지만 용출되는 원지점은 지형이 험난하고 상록수림이 우거져있어 접근하기 어렵다. 그러나 용출된 물이 모여 하류로 흐르면서 폭포와 함께 큰 물웅덩이()를 이루는 원앙폭포는 데크와 계단 시설이 잘 되어있어 쉽게 방문할 수 있다.

원앙폭포로 향하는 계곡은 가파른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할 정도로 깊다. 내려가는 계곡 양 옆으로는 사스레피나무, 참식나무, 예덕나무, 붉가시나무 등 난대 상록수림이 울창하게 우거졌다.


물이 맑고 차갑기로 유명한 원앙폭포는 피서철에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계단을 내려가노라면 멀리서 들리는 폭포 소리에 기대감이 차오른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드러나는 투명한 옥색 물빛을 보면 누구나 탄성을 지르게 된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폭포는 이름처럼 한 쌍의 폭포가 사이좋게 흐르고 있다. 비가 많은 시기엔 옆에 조그만 애기 폭포가 하나 더 생기기도 한다. 5미터 남짓한 아담한 폭포이지만 물소리만큼은 한라산의 기세를 담아 웅장하다.

바닥에 돌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고 투명한 물빛은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게 유혹한다. 하지만 여름이라고 물 온도를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처음엔 1분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뼛속까지 시린 수온에 놀라 들어가자마자 바로 돌아 나오게 된다. 땡볕에 달궈진 너른 바위에 엎드려 몸을 말리노라면 한여름 햇살이 따듯하게 느껴질 정도다.

제주에서는 음력 7월 보름 백중날에 폭포에서 물맞이 하면 여름 내내 더위를 먹지 않고 신경통이 낫는다는 속설이 있어 주민들이 물맞이 하는 풍습이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친척 어르신들이 폭포 아래서 큰 비닐을 뒤집어쓰고 물맞이 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폭포 주변 바위를 뒤덮은 다양한 이끼들이 아름답다.

폭포 주변의 암벽과 바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녹색 생명체인 듯 다양한 양치식물과 이끼류로 가득 뒤덮여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돈내코 계곡 일대에는 희귀식물 한란과 겨울딸기가 자생한다. 특히 제주 한란은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종 자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제주 상효동 한란 자생지에는 한란을 볼 수 있도록 일부 구간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원앙폭포 아래 돈내코 계곡 숲에는 제주 상효동 한란 자생지가 있어 철책을 만들어 보호하고 있는데, 이 일대가 한란이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에 해당한다.

꽃이 121월의 추운 겨울에 피어서 한란寒蘭이라 불리는데 흰 눈밭에 푸른 잎과 고고하게 핀 꽃은 향기 또한 뛰어나다고 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채취, 겨울철 노루 먹이, 과수원 확장 등으로 멸종위기에 있어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 야생 식물 1급으로 지정되었다.

돈내코 계곡이 속한 영천靈泉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이 되는 구역으로 생물다양성 보전이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자료 :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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