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체왓숲길에 감춰진 보석, 서중천 습지


머체왓 소롱콧길에 있는 서중천 습지.

 

글/사진 :습지블로그 서포터즈 양정인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에 위치한 머체왓숲길은 제주 중산간 목장 지대의 초원과 원시림, 수려한 서중천 계곡의 풍광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품은 숲길이다. 그 중에도 머체왓 소롱콧길에 감춰진 서중천 습지의 매력을 빼놓을 수 없다.

머체왓숲길이 조성된 곳은 한남리 마을공동목장이 있던 곳이다. 한때는 개발 사업으로 이곳에 골프장이 들어설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이 공동목장을 보전하면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한 끝에 2012년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을 통해 '머체왓숲길'을 조성하고, 2018년에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받기도 했다.

 

머체왓숲길에서 보이는 오름과 한라산 능선.

머체왓숲길을 찾을 때마다 말들이 유유자적 풀을 뜯는 초원 너머로 오름을 품은 한라산 자락을 마주하며 감동과 안도감을 느낀다. 골프장이 들어섰다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바뀌었을 초원이다. 뒤엉킨 나무와 덩굴, 난대림 특유의 상록활엽수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들판은 이것이 진짜 제주라고 속삭인다.

머체왓은 이 일대가 돌(머체)로 이루어진 밭()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머체왓숲길(1코스, 6.7km)과 머체왓 소롱콧길(2코스, 6.3km)로 조성된 탐방로는 서중천탐방로와 연결되어 있다. 숲길은 서중천과 접하는 1.3km를 공유하고 있으며 그곳에 서중천 습지가 보석처럼 빛난다.


머체(돌)위에 뿌리를 내린 구실잣밤나무.
제주의 원시림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머체왓숲길을 걷는 동안 동백나무 군락, 조록나무 군락, 참꽃나무 군락, 나도히초미 군락, 편백나무 숲길 등 다양한 식생을 만난다. 숲길이 조성되기 전에는 50여 년 간 사람의 발길이 없던 곳이다. 돌과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리느라 판근이 발달한 나무들은 뿌리와 돌의 경계가 사라져 한 덩이가 되었다. 숲의 시간이 실감나는 기기묘묘한 풍경들이 곳곳에 펼쳐진다.


바위에 푸른 이끼가 가득 깔린 서중천 습지의 모습.

머체왓숲길 2코스인 소롱콧길로 접어들면 서중천 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계곡 옆으로는 서중천 숲터널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이런 특이한 지형이 작은 용(小龍)을 닮아서 '소롱콧'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명이 있다. 1코스를 2시간 30분 정도 걷고 난 뒤에 만나는 이색적인 습지의 풍경이 오아시스처럼 반갑다. 깊은 숲이 검푸르게 반영된 서중천 습지의 풍경은 별세계인 듯 신비롭다. 계곡과 숲이 만나는 습지 주변 바닥은 울퉁불퉁 용암이 굳은 지형이다. 용암 바위에는 초록빛 이끼가 가득 뒤덮여 있어 이 또한 진풍경이다.

 

서중천 습지의 5월. 너구리꼬리이끼, 호자나무꽃, 매화노루발, 석위.
 

습지 주변엔 부처손, 애기모람, 석위 같은 다양한 습지 식물이 자란다. 봄이 되어 찾았을 땐 건기에 잎이 말려있던 너구리꼬리이끼가 보슬보슬 살아나 있다. 풍성하고 윤기어린 이끼의 모습이 탐스러워 절로 손으로 쓰다듬어보게 된다. 초여름으로 접어들면서는 물을 좋아하는 호자나무에도 꽃이 피고 매화노루발 꽃도 고개를 내민다. 겨울에는 습지를 좋아하는 자금우와 백량금이 빨간 열매를 맺는다.


서중천 습지의 12월. 부처손, 백량금, 애기모람.


서중천의 나무들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구실잣밤나무다. 계곡 양 옆으로 오래된 아름드리 구실잣밤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수형이 독특하고 아름답다. 난대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인데 제주의 하천 양쪽으로 구실잣밤나무가 우거진 숲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바람이나 새에 의해 씨앗이 퍼지는 나무와 달리 작은 열매가 냇물을 따라 이동해 착생해서 번식하기 때문이다.

소롱콧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서중천탐방로가 이어진다제주의 하천은 화산 폭발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 한라산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있다서중천은 그 중에서 세 번째로 긴 하천으로 12Km에 이른다한라산 흙붉은 오름에서 발원하여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중심부를 가로질러 남원리와 태흥리 바닷가로 흘러간다.


서중천 계곡 양 옆으로 아름드리 구실잣밤나무 군락이 눈길을 끈다.

서중천은 하천의 폭이 좁고 바닥은 물이 잘 빠지는 현무암과 기암절벽으로 용암층 밑으로 지하수가 흐른는 건천이다. 하지만 서중천 군데군데에는 크고 작은 소()들이 발달하여 가축과 야생동물에게 생명수 역할을 했다. 한남리 역시 고나물, 허개물, 족쟁이수, 바령수 등 하천에 물이 고여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용암이 만든 하천은 곳곳에 습지를 형성하고 독특한 식생을 이루어 원앙, 차걸이난 등 보호종이 자라고 있다. 또한 물이 귀한 제주의 중산간에 습지의 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문화를 이루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머체왓숲길의 서중천 습지를 찾아가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다. 머체왓숲길 1코스(6.7km)를 걷고, 2코스(6.2km)소롱콧길까지 걷는 길은 꽤 긴 코스지만 제주의 초원과 원시림, 계곡과 습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짧게 서중천습지를 둘러보려면 2코스 소롱콧길만 걸을 수도 있다. 서중천 계곡의 다양한 소()와 식생, 지질을 집중적으로 탐방할 수 있는 길로는 한남리 마을에서 시작해 서중천을 거슬러 오르는 서중천탐방로(편도 3km)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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