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들의 추억과 함께 흐르는 곳 산지천(산짓물 : 제주 습지)
제주 사람들의 추억과 함께 흐르는 산지천(산짓물:제주습지)
2024. 09. 25
글/사진_습지블로그 서포터즈 박젬마
제주에는 다양한 형태의 습지가 있습니다.
그 중 산지천은 제주시 삼의악과 관음사(한라산 북사면 해발 약 720m) 지점에서 발원하여 아라동, 이도이동, 이도일동, 일도일동과 건입동 산지포구로 바다와 만나는 하천입니다.
하류는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구간으로 기수역(해수와 담수가 혼합되어 있는 곳의 염분이 적은 물), 습지입니다.
습지는, 영구적 혹은 일시적으로 습윤한 상태를 유지하고 그러한 환경에 적응된 식생이 서식하는 장소를 의미하며, 상세한 정의는 나라마다 전문가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습지란,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담수, 기수 또는 염수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지역으로서 내륙습지와 연안습지, 인공습지를 말합니다.(습지보전법 제2조 1항)
내륙습지 : 육지 또는 섬 안에 있는 호, 소, 늪 하천 또는 하구 등의 지역.
연안습지 : 만조시에 수위선과 지면이 접하는 경계선으로부터 간조시에 바다 쪽으로 수심 6m 까지의 지역.
인공습지 : 인간의 활동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복원된 습지. - 국립생태원 '습지의 정의'
빨래터
산지천은 산짓물, 상류는 가락천이라고도 불리며, 예로부터 여러 고문헌에도 많이 등장하는 중요한 하천 중 하나입니다.
제주의 대부분 하천은 평소 물이 흐르지 않고 비가 내릴 때 일시적으로 물이 흐르는 건천이 많은데, 산지천은 하류에 용천수(솟아나는 물)가 풍부해서 이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습니다.
지장샘
광대물
'산짓물', '금산물', '노릿물' 등 수량이 풍부한 용천수가 많아서, 제주시에 상수도가 공급되기 이전인 1960년대초까지 제주시민들의 식수로 이용되기도 하고 빨래터로도 유명했습니다.
조천석
과거 산지천은 제주성 안에 사람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하기도 했지만 반면 근심거리이기도 했습니다.
폭우가 내리면 성안에 산지천엔 물난리가 나서 모든 걸 다 쓸어버려 인명과 재산피해가 컸습니다.
자연재해가 반복되자 경천암이라는 바위 위에 조천석을 세워서 홍수의 재앙을 막아주도록 하늘에 기원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경천암과 조천(朝天)이란 조두석이 남아있습니다. 이는 재앙을 막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자 물의 높이를 보며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금산물
산지천은 바다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서 밀물 때는 바닷물이 올라와 식수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금산물을 이용했습니다. 금산물은 산짓물보다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었고 수량이 풍부했습니다.
일제 강정기에는 발전소가 세워져 온수를 사용할 수 있는 제주 최초의 공중목욕탕이 되기도 했습니다.
산짓물과 장샘물을 길어다 팔아서 먹고 살았던 물장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자동차로 오르고 내려도 어지럼증이 생길 정도 높은 언덕 위 공덕동산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산지천에서 물을 길어다 먹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6.25 한국전쟁 때 제주에 피난 온 차라리라는 사람이 물지게를 지고 공덕동산의 집마다 물을 길어다 주고 돈을 받으며 살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먹이 활동하는 청둥오리들과 왜가리
용천수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니 산짓물은 천혜의 빨래터이기도 했습니다.
빨래터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으니 나름 빨래팡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심해서 이른 새벽부터 사람이 몰렸고, 새벽부터 빨랫방망이를 두드리는 소리에 산지천 주변에 사는 어른들은 새벽잠을 설쳤다고 항의를 하거나 돌멩이를 던지며 빨래를 방해하기도 했다니 물이 가까워서 편리한 만큼 애로사항도 있었나 봅니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60년대에 산지천을 덮어 주택과 상가건물을 지으면서 환경오염 문제가 생기자 1995년에 복원 사업을 시작, 복개한 산지천을 걷어내고 되살려 2002년 다시 옛 모습인 자연 생태하천으로 복원되면서 주변에는 공원도 조성됐습니다.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산치천을 벤치마킹하여 서울시의 청계천을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가정에서 키우던 반수생 거북
2024년 산지천.
이제는 물을 길으러 오는 사람도 없고, 빨래를 하러 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산지천주변을 걸으며 옛 추억을 회상하거나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것을, 그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날아든 새들을 보며 풍경을 감상할 뿐입니다.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구간인데 바다거북도 아닌 반수생 거북이들이 여러 마리 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먹이활동 중인 새를 노리는 고양이
길고양이가 먹이 활동을 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는 뱀장어, 은어, 숭어, 학꽁치, 밀어 등의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오라기, 쇠백로, 흑로, 왜가리, 청둥오리, 괭이갈매기 등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찾아오고요.
낚시에 성공한 왜가리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 제주는 물이 매우 귀한 섬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안가의 용천수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고, 물허벅, 물구덕, 물팡 등 제주만의 독특한 물 문화가 형성됐습니다.
상수도가 보급된 후 용천수 이용이 줄었고, 이용 가치가 없다고 여겨진 용천수는 개발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용청수를 마시거나 빨래터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용천수는 보존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이 바로 지하수이고, 용천수는 지하수의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거울이라 함은, 땅속에 있는 지하수를 용천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용천수를 솟아나지 않으면 지하수가 부족하다는 현상일 수 있고, 용천수가 오염되었다면 지하수도 오염되었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하수의 관리 측면에서도 용천수 보호가 중요합니다.
#산지천 #산짓물 #금산물 #노릿물 #제주습지 #용천수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