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 윤남못
신엄리 윤남못 생태계서비스 살펴보기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 윤남못
(사)제주생태관광협회 대표 고제량
제주도 생태적 가치
제주는 화산섬이다. 180만년전부터 2만5천년전까지 수 없는 화산활동으로 섬 하나가 우뚝 쌓였다. 초기에는 수성화산 활동에 의하여 가늘고 세밀한 화산재가 쌓이기 시작했고, 중기 이후에는 육상 화산활동으로 현무암에서부터 화산 송이(스코리아)까지 다양한 화산쇄설물로 다채로운 제주 자연환경이 형성되었다. 한라산, 오름, 곶자왈, 습지, 용암동굴, 해변, 하천, 뱅듸 등으로 제주 자연생태를 구분하여 그 특성과 가치들을 살펴보면 한반도와는 많은 차이가 있고 독특하다.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지질적 특성과 바람과 더불어 정착한 생물들의 모습은 기기묘묘하고 신비롭다. 그 가치들로 인해 유네스코는 제주도를 생물권보전지역(2002년), 세계자연유산(2007년), 세계지질공원(2010년)으로 인증했고, 람사르협약은 람사르습지 5곳과 람사르습지도시 2개 지역을 인증했다. 이정도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제주 자연은 보편 탁월한 가치를 인정받아 마땅하다.
제주 습지
제주의 습지는 화산활동의 흔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람사르협약에 등재된 5곳의 람사르습지는 오름 분화구에 습지가 형성된다거나 점도가 낮은 파호이호이 용암이 흐른 들판에 용암판(빌레)이 물그릇 역할을 하며 습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곶자왈에도 파호이호이 용암이 흐른 곳에는 용암판이 기저에 깔리면서 습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런 특별함으로 볼 때 제주도 습지는 형성 원인을 반영하여 오름습지, 곶자왈습지, 뱅듸습지라고 제주만의 이름을 지어주면 어떨까?.
제주특별자치도가 기록한 습지 목록은 내륙습지 322개, 연안습지 21개이다. 내륙습지는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을 시작으로 한라산 중턱의 오름습지들과 중산간 들판에 형성된 뱅듸습지, 곶자왈 숲에 형성된 곶자왈습지를 말한다. 그리고 약 21개소의 해변에 형성된 연안습지는 갯벌과 조간대 등 다양한 모습이다. 이러한 습지가 발달한 덕분에 제주에는 지하수가 많이 함양된다. 대표적으로 생수 중에 최고라는 삼다수가 전국에 시판되면서 국민 다수가 제주의 물을 마시고 있다. 제주 습지의 공급서비스를 전 국민이 누리고 있다.
습지 정의 및 습지보호지역
습지란 물을 머금어 축축한 땅을 말한다. 우리나라 습지보전법은 습지를 “담수·기수 또는 염수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지역으로서 내륙 습지 및 연안습지”라고 정의하고 있다(습지보전법, 2조 1항). 내륙습지는 “육지 또는 섬 안에 있는 호 또는 소와 하구 등의 지역”을 가리키며, 연안습지는 “만조 시에 수위 선과 지면이 접하는 경계선으로부터 간조 시에 수위 선과 지면이 접하는 경계선까지의 지역”이라 정의하고 있다.
제주도 습지 중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습지는 내륙습지인 물장오리습지· 물영아리습지·1100고지습지·동백동산습지·숨은물뱅듸습지와 연안습지인 오조리갯벌 등 총 6개이다.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습지는 ‘습지보전법’과 ‘제주특별자치도 습지 보전 및 관리 조례’에 의해 관리 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습지들은 방치되고 있어 습지로서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습지라 할지라도 다양한 습지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므로 모든 습지는 중요하다.
습지생태계서비스
습지는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식수를 제공하거나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하고, 생태계 순환과정에서 기후, 온도, 홍수 조절을 하며, 토양을 형성하고 물질을 순환시켜 다양한 생물이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에게 휴양이나 교육 등의 혜택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습지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는 습지생태계서비스라고 정의하고 있다. 습지생태계서비스는 4가지로 구분하며 공급서비스, 조절서비스, 문화서비스, 지지서비스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암암리에 습지생태계서비스를 받고 살고 있다.
습지와 문화
제주에는 중산간 마을 곳곳에 물통이 있다.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봉천수 습지이다. 1970년대 초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은 물통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을 얻었다. 화산 암반 중 파호이호이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용암판(빌레용암) 위에 형성된 물통이 있고, 미세한 찰흙이 기반이 되어 물이 고인 물통도 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지형 조건이 낮아 주변 물이 고이는 곳에 돌담을 쌓아 물이 오래 저장되도록 다듬은 물통을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물통은 제주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연에 사는 동식물들에게도 생명수였던 습지이다.
신엄리 윤남못 생태·문화적 가치 그리고 위기
애월읍 신엄리에는 윤남못이라는 넓은 습지가 있다. 신엄리 1383-2번지 주변에 2개의 물통으로 윤내미물통이라고도 불린다. 왜 윤남못이라 이름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곳은 주변 지형보다 낮아 자연적으로 주변에서 물이 흘러들어 형성된 습지이다. 신엄리 주민들은 윤남못을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식수로도 이용했고, 말과 소에게 물을 먹이는 곳으로도 활용했다. 그러나 마을에 상수도가 들어오고 목축업이 축소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윤남못의 물을 이용하지 않는다. 마을 공동체가 공동관리하던 물통은 이용되지 않으면서 방치되었고 쓰레기가 쌓여가기도 했다.
한편 윤남못 입구에는 마을 청년들이 세운 표지석이 서 있다. 표지석에는 윤남못의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고 한때 생명수였던 윤남못이 훼손되는 것이 안타까워 다시 복원하고 관리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러나 청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윤남못은 주변 개발에 야금야금 매립되고 훼손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윤남못을 포함한 주변 땅이 대규모 물류창고 건설계획이 세워지기도 했다. 다행히 건축허가가 나지 않아 무산되었지만 호시탐탐 윤남못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위기의 윤남못앞에서 이러한 질문을 해보자. 인간에게 용도가 끝난 윤남못은 정말 불필요한것일까?, 그리고 정말 윤남못이 인간에게 용도가 끝났는가?
윤남못 습지생태계서비스
이 질문의 답을 앞서 언급한 습지생태계서비스에 비추어 살펴보자. 먼저 공급서비스 측면에서 보면 현재 윤남못에서 직접 물을 길어다 먹지는 않으나 습지에서 서서히 지하수로 정화되어 저장된 지하수를 인간이 활용하고 있는 혜택은 여전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두 번째 조절서비스 측면에서 보면 습지는 뜨거워진 기온을 떨어뜨려 주기도 하고, 기후위기로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질 때 한시적으로 많은 양의 물을 저장하여 주변 피해를 줄이기도 한다. 또한 이산화탄소를 저장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역할을 하므로 조절서비스 역시 여전하다. 세 번째로 문화서비스 측면에서 보면 윤남못은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습지 생태교육과 습지 공원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윤남못 주변에는 습지 학습장에 필요한 표지판뿐만 아니라 탐방로가 잘 설치되어 있고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네 번째 지지서비스 측면 역시 건강한 습지를 유지하며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는 서식처가 되고 있다. 이처럼 윤남못은 말없이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윤남못은 사람들에게 용도가 끝나지 않았다. 더욱이 윤남못의 가치는 인간이 이용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습지에 어우러진 생태계가 기준이다.
윤남못에는 수련, 마름, 개구리밥, 세모고랭이, 부처꽃, 노랑 꽃창포 등 식물이 다양하고, 흰뺨검둥오리, 논병아리, 중대백로, 쇠백로, 참개구리, 살모사, 유혈목이, 물자라, 맹꽁이 등 동물들이 살아간다. 이처럼 윤남못은 셀 수 없는 생명들이 깃들어 있다. 이것은 윤남못이 보호받아 마땅한 이유이다.
습지와 인간의 관계 회복
윤남못과 같은 제주의 습지는 한때 직접적인 먹는 물 공급지였기 때문에 지역 공동체가 습지보전에 적극적이었다. 목축문화가 활발한 지역의 특성상 곳곳에 형성된 습지를 말과 소의 물먹이 장소로 중요하게 여겨 마을 공동체 모두가 관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지하수 개발과 상수도 공급으로 윤남못과 더불어 자연 습지 봉천수들은 인간에게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많이 사라지고 있다. 도로 건설로 매립되기도 하고, 도시개발 과정에서 유실되기도 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육화로 습지 기능을 잃은 곳이 많다. 1970년대 이후 지구 습지 35% 이상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개발과 도시팽창 그리고 기후위기로 육화 속도가 빨라져 많은 내륙습지와 연안습지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 속도로 제주 습지들이 사라진다면 제주도는 머지않은 미래에 물 부족으로 곤란을 겪게 될 것이 뻔하다.
이제 인간은 습지와 관계를 회복해 나가야 한다. 사람들의 사용이 끝났다고 해서 더 이상 불필요하다 단정하지 말고 생태계 전체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작은 물통 습지라도 그 가치를 재인식해야 한다. 지구 지표면적의 6%가 습지이고 지구 생명의 40% 이상이 그 습지에 기대어 살고 있다. 우리 인간 역시 습지에서 물과 식량을 얻고, 습지가 조절해주는 안전한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수많은 생물다양성 안에서 문화서비스를 받으며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제주의 습지는 작고 앙증맞다. 한반도의 넓고 깊은 습지에 비하면 작고 볼품없어 보일지 몰라도 화산섬의 특별한 습지로서 다양한 가치를 품고 있다. 따라서 섬사람들의 생명수였던 물통에서부터 용천수, 지하수까지 다양한 물 이용의 역사와 마을마다 문화적 기억과 흔적이 있는 한, 계속해서 습지와 돈독한 인연을 이을 수 있으며, 물과 공동체가 공존할 수 있다는 약속이 가능하다.
신엄리 마을 공동체 주관 윤남못 생태계서비스지불제 계약 활동 제안
윤남못 습지는 세 개의 영역이다. 하나는 수위가 깊은 물통, 다른 하나는 수위가 얕고 넓은 물통, 마지막은 논으로 활용되다가 현재는 묵혀놓아 육화가 진행된 습지이다. 차후 자세히 생태모니터링을 해봐야 알겠지만 세 개의 영역에서 모두 다른 식생과 생물의 서식 형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각각의 환경에 잘 적응해 사는 생물이 다양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윤남못은 앞으로 발굴해야 할 가치가 높은 곳이라 할 수 있다.
11월 하순, 윤남못 풍경은 아름답다. 커다란 팽나무의 낙엽이 지고, 물 위로 솟은 큰고랭이, 송이고랭이, 골풀, 여뀌, 고마리 등 수초들은 무성했던 여름을 보내고 겨울 채비를 한다. 초록의 풀들이 누렇게 삭아들 즈음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논병아리 등 철새들은 윤남못으로 조용히 찾아든다. 12월이면 더 많은 새들이 날아와서 쉴 것이다. 이처럼 윤남못 생태계는 건강하다.
신엄리는 윤남못의 생태계서비스 향상을 위하여 제주도와 생태계서비스지불제 계약을 체결하여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 생태탐방로를 정비하고 생태모니터링을 진행하여 정기적으로 그 결과를 기록하며, 과다한 생물을 덜어내는 작업도 해야 한다. 생태교란종 제거 활동 역시 신엄리 주민들이 나서서 해야 할 중요한 활동이다. 신엄리 마을 공동체가 윤남못의 생태계서비스를 높여간다면 훌륭한 생태관광지와 습지생태교육장으로 활용될 것이다. 또한 경관이 뛰어난 습지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사람들의 휴양처가 될 것이다. 이제 훼손의 행동을 멈추고 습지의 회복탄력성을 지키고 습지와 절실한 관계 회복을 이뤄가야 할 시간이다. 그것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주체가 주민이다.
제주시 람사르습지도시 내 윤남못
제주시는 2018년 람사르협약이 인정한 람사르습지도시이다. 람사르습지도시는 도시팽창으로 훼손될 습지를 보전하겠다는 약속을 한 도시에 주는 람사르협약 브랜드이다. 람사르습지도시는 람사르습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주민참여를 통해 습지를 보전하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도시에 협약이 인증하는 제도이다. 2018년 처음 7개국 18개 도시가 인증되었던 것이 올해 14차 총회에서는 추가로 인증되어 18개국 43개 도시가 람사르습지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들은 주민 주도로 습지 교육과 국가 경계를 넘는 교류와 협력을 통해 습지를 보전해 나갈 것이다. 도시와 습지는 공존해야 서로 안전할 수 있다. 애월읍에는 람사르습지 숨은물뱅듸와 더불어 많은 습지가 서로 연결되어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있다. 그 생태적 가치를 우리 인간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빛나는 윤남못을 다시 한번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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