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국제공항, 제주 연안습지의 조류 모니터링

글/ 사진 : 습지블로그 서포터즈 양정인



성산읍 신천리 연안의 아침.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넓적부리 등 다양한 새들이 날아오르고 있다. (2023.2.26) 

습지의 겨울은 한숨 쉬어가는 계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제주의 연안습지는 겨울에 더욱 활기를 띈다. 수천 킬로미터 하늘길을 날아 귀한 손님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무리를 지어 신나게 자맥질 하며 먹이활동을 하는 흰뺨검둥오리, 삐익삐익 귀여운 울음소리가 귀여운 홍머리오리, 일제히 푸드득 날갯짓하며 날아오르는 재갈매기 모습은 언제나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구좌읍 하도리 습지얕은 수심과 갈대숲이 많아 오리류가 서식하기에 좋다. (2023.2.5.)

 

연안습지는 해안의 조간대,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역, 철새도래지 등이 해당된다. 제주의 경우는 섬 전체가 바다에 둘러싸여 있으니 해안가 전체가 연안습지이다

그 중에도 제주 동쪽의 구좌읍 하도리에서 성산읍 시흥리까지 이어지는 해안 조간대는 제주 최대 규모이면서 용천수가 풍부하게 나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역으로 새들의 먹이가 되는 조개류, 게류, 갯지렁이가 많다. 또한 주변에 갈대 군락, 농경지 등 작은 습지들은 강한 바람과 추위를 피하기에 좋아 곳곳에 철새도래지가 형성되어 있다.

 

성산읍 오조리 내수면 습지 (2023.2,5)


2015년 국토부는 이곳 철새도래지 인근 성산에 제2공항 건설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건설 예정지에서 하도리 철새도래지는 불과 8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공항에서 15킬로미터는 떨어져야 조류충돌 등의 문제에서 안전하다고 이야기 한다.

제주 제2공항 건설 같은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 장기적으로 환경보전에 대한 계획과 얼마나 부합한지, 해당 지역에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타당한지, 해당 계획이 적정한지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한다. 국토부는 2015년 제2공항 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나서 환경부에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고 세 번이나 반려되었음에도 올해 또 다시 보완하여 제출하고, 202336(예정) 환경부의 발표를 앞두고 있다.

국토부가 보완 제출한 내용에 이런 사업이 제주 연안습지와 조류 서식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비행기와 조류 충돌의 문제는 어떨지 충분히 검토가 이루어져 있을지는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역의 자연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이 그간 꾸준히 이 지역의 자연 생태를 모니터링 해왔다.


제주 정산~구좌 지역의 조류 모니터링을 하는 시민들 (2023.2.26.)


마침 지역 시민 단체인 성산환경을지키는사람들마을동쪽신문 곱을락에서 진행하는 제2공항 사업 예정부지인 성산-구좌 지역의 조류모니터링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천미천의 하구인 성산읍 신천리에서 출발해 삼달리, 신산리, 온평리, 구좌읍 종달리, 하도리까지 새들을 모니터링 하게 되었다.

조류 모니터링에 함께 한 전북대학교 주용기 연구원은 30여명 가까이 사람이 모였기에 새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개별행동을 하지 않고 천천히 무리지어 움직일 것을 당부했다. 옷차림도 밝은 원색보다는 회색이나 검정 계열의 무채색이 좋다는 안내를 사전에 받았다. 모니터링을 하면서 새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제법 바람이 맵찬 날, 제주 동쪽의 연안습지를 죽 따라가면서 망원경 너머로 다양한 새들이 무리지어 먹이활동을 하거나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구좌읍 하도리 연안 습지. 댕기흰죽지. (2023.2.26)


구좌읍 종달리 연안 돌틈에서 휴식을 취하는 민물도요. (사진제공 제주시민생태조사단)




성산읍 신천리 흰뺨검둥오리 (사진제공: 제주시민생태조사단)


성산읍 신천리 연안 중대백로와 흑로. 다양한 오리류. (사진제공 제주시민생태조사단)

성산읍 오조리~ 고성리 연안 물닭 (사진제공 제주시민생태조사단)


종달리~시흥리 연안 홍머리오리 (사진제공 제주시민생태조사단)

 

천미천 하구 성산읍 신천리 연안 청둥오리알락오리홍머리오리 등 다양한 오리류가 쉬고 있다.
(
사진제공 제주시민생태조사단)

새들은 이 곳 연안습지 수 킬로미터를 수시로 오갈뿐 아니라 내륙 하천의 소()나 습지를 오가며 지낸다. 먹이, 바닷물 수위, 기온, 바람과 파도 등 여러 조건에 따라 이동하기에 꽤나 넓은 지역이 새들의 단일생태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날 모니터링 지역에서는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 물수리, 저어새를 관찰할 수 있었다.

 

구좌읍 종달리 연안 상공의 물수리.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지정 관심종(LC). 환경부지정 멸종위기종 2급.
(
사진제공 제주시민생태조사단)


성산읍 오조리 습지 흑두루미. 국재자연보전연(IUCN) 취약종(VU), 환경부지정 멸종위기종 2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2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제공 제주시민생태조사단)

 

모니터링에 참가한 가족이 흑두루미 먹이를 준비해와 흑두루미가 지내는 오조리 습지에 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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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제주시민생태조사단)


저어새의 먹이활동은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구좌읍 하도리 습지에서 운 좋게 관찰할 수 있었다. 저어새는 세계에 6천여 마리 정도밖에 없어 국재자연보전연맹(IUCN) 멸종위기종(EN)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 해양수산부 지정 보호대상 해양생물종이며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205호이기도 하다.

 

구좌읍 하도리 습지의 저어새. (사진 : 주용기 전북대학교 연구원)

하도리 습지에서 발견한 저어새는 모두 24마리 였는데 그 중 한 마리는 다리에 H54가 새겨진 가락지를 끼고 있었다. 이 가락지는 조류학자 이기섭 박사가 강화도 각시암 섬에서 20166월에 부착했던 것이다. 이기섭 박사에 의하면 그 후 이 저어새는 매년 인천 송도와 제주도를 오가며 겨울을 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하는데 마침 이 날 모니터링 중에도 그 저어새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 저어새는 대만이나 일본 오키나와에서 겨울을 나지만 H54 가락지를 낀 저어새는 더 남쪽으로 가지 않고 꾸준히 하도리 연안습지를 찾아와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이다. 이날 모니터링을 안내했던 주용기 연구원 역시 이 저어새(H54)201848일에 하도리 갯벌에서, 2018425일에 종달리 갯벌에서, 2020118일에 하도리 갯벌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도리와 종달리 연안습지에서 관찰된 H54 가락지를 낀 저어새. (사진: 주용기 전북대학교 연구원)

이름처럼 넓적한 부리로 물을 저어가며 하도리 습지에서 먹이를 잡던 저어새 무리는 30분 정도 지나자 지미봉의 서쪽으로 돌아서 종달리 갯벌 방향으로 날아갔다. 다시 저어새가 날아간 종달리 갯벌로 가보니, 저어새 9마리가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어새 무리 중에 역시 가락지 H54를 낀 저어새도 함께 관찰되었다.

 

구좌읍 종달리 연안습지썰물이 되자 재갈매기 괭이갈매기 무리와 저어새백로류도요새류가 먹이활동 중이다. (2023.2.26.)

하도리 철새도래지를 비롯한 오조리, 종달리 철새도래지가 있는 제주 동쪽 연안습지는 해마다 30-40여종, 5천여마리의 새가 찾아온다. 수심 40센티 이하 얕은 물은 알락오리 홍머리오리 흰뺨검둥오리 다양한 오리류들이 지내기에 좋다.  파래, 방게 같은 먹이가 풍부하고 영하까지 내려가는 경우가 거의 없어 새들이 겨울나기엔 최적의 장소다. 논병아리, 가마우지는 물론 물수리 같은 맹금류 역시 먹이가 풍부하니 1년 내내 서식하기도 한다.

그 중엔 천연기념물인 저어새와 노랑부리저어새, 고니, 매 뿐 아니라, 물떼새류, 도요새류, 등의 철새가 모여든다. 썰물 때와 밀물 때에 따라 움직임이 활발하며, 백로류, 오리류, 갈매기류, 도요물떼새 등이 특히 좋아하는 곳이다. 보통 썰물 때에 먹이사냥을 하며, 저어새와 물수리도 이곳에서 먹이를 찾는다. 겨울철 바람이 심하게 불 때에는 재갈매기와 괭이갈매기가 이곳 수면 위에서 수천 마리가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제주시 성산읍 오조리 내수면 습지.
청둥오리, 홍머리오리, 흰뺨검둥오리 등 오리류 새들이 돌 위에 앉아 쉬고 있다. (2023.2.5.)

이날 모니터링을 하며 제주섬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만 휴식처가 되어주는 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 천 킬로미터를 날아 찾아오는 새들에게도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형의 변화, 조류, 바람의 변화에 민감한 새들이 이곳에 제2공항 같은 대규모 시설이 들어서게 된다면 계속 이곳을 안전한 휴식처로 여기고 찾아올 수 있을까?

새들을 모니터링 하며 나눈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노란 유채꽃이 한창 흐드러진 해안가엔 많은 관광객들이 나들이를 나와 있었다. 성산일충봉의 웅장한 모습과 파란 바다와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러나 바로 옆에 무리지어 앉은 다양한 종류의 새들에 대해서는 무심할 뿐이다. 이곳에 저어새나 흑두루미 같은 귀한 보호종의 새들이 있다는 걸 안다면 제주는 또 다른 보석을 품은 곳으로 새롭게 다가오지 않을까?

철새도래지 주변에 새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새를 관찰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새들과 연안습지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생태적인 방식으로 관광자원을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누었다. 전시행정으로 시설을 만들 것이 아니라  예민한 새들의 생태를 잘 알고 전문적인 조언을 줄 수 있는 이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제2공항의 문제만 해도 제주도나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의 소통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제주를 찾는 것은 제주만이 가진 천혜의 자연을 누리기 위해서일 텐데 그것을 거스르는 정책이 참으로 아쉽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혜안이 절실한 때이다.

  


225~273일간의 모니터링 내용을 종합해 보면 종수 41, 총 개체수가 11678마리의 조류가 관찰되었다. 그 중 국내 법정보호종이 9종에 총 63마리였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이 6종에 56마리, 해양수산부 지정 보호대상해양생물종이 2종에 21마리,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이 6종에 36마리였다. 또한 IUCN(세계자연보전연맹) 지정 국제보호종 중에서 멸종위기종(EN)은 저어새, 취약종(VU)은 흰죽지, 흑두루미, 준위협종(NT)은 청머리오리, 댕기물떼새, 관심종(LC)는 큰기러기, 노랑부리저어새, 물수리, 매 등 총 9종에 전체 354마리가 관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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